문득 홍백 얘기를 매년 쓸 필요는 없지 않나 싶었습니다만... 새삼스럽게 느낀 건데, 제 의지로 보는 TV 방송이 홍백가합전 말고는 정말로 없더군요. 1년 동안 TV 수신료와 케이블 티비 시청료를 내는 이유가 홍백가합전을 보는 것 말고는 없는 거죠. 그런 의미의 홍백 얘기입니다.

이미지 출처 : NHK 홍백가합전 공식 홈페이지
https://www.nhk.or.jp/kouhaku/
올해 홍백가합전은 한 마디로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돌'이죠. 심지어 사회자 중 한 명도 아이돌이었으니...
일본의 음악 시장도 많이 바뀌었고 큰 흐름에서 완전히 독립적일 순 없단 생각이 듭니다. 일본에 K-POP식 퍼포먼스형 댄스 아이돌이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건 이제 꽤 오래 됐습니다만, 그동안은 자체적으로 뭔가를 만들어 보려고 했다면 올해는 K-POP 스타일로 어떤 선을 넘어서 아예 바뀌었단 생각이 들더군요. 이젠 꽤나 한국 아이돌 같아졌어요.
몇 번 이야기했지만, 개인적으로 한국식 아이돌 가수는 취향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전 노래는 귀로 듣는 걸로만 완성되는 게 좋거든요. 한국식 아이돌은 뮤직 비디오로 완성되는 아이돌이고, 그보다는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퍼포먼스 무대로 완성되는 아이돌이니까요.
기본적으로 노래에 관심이 있지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겐 큰 관심이 없다 보니... '아이돌(우상)' 가수란 존재에, 특히나 한국식 아이돌의 노래엔 관심이 더욱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홍백은 저한텐 별로 재미가 없었어요.

이미지 출처 : 유튜브 NHK 채널
https://www.youtube.com/@nhk_music/videos
한국 아이돌 그룹만 6팀(Stray Kids, NiziU, LE SSERAFIM, SEVENTEEN, MiSaMo, NewJeans)이 나왔고요. 비슷한 컨셉의 일본 아이돌 그룹들이나, 다른 컨셉의 예전 스타일의 일본 아이돌 그룹도 많이 나왔습니다. 그야말로 아이돌판!
이런 걸 보면 K-POP 아이돌이란 게 서양에서 주류까진 아니더라도, 확실히 아시아 스타일 음악 시장의 국제적 흐름을 선도하는 시대가 됐단 생각도 듭니다. 예전엔 말로만 그랬다면 이젠 진짜인 거죠.
그리고 K-POP 아이돌과 일본 방송도 전보다 많이 발전했다고 느낀 게, 예전에는 홍백에 K-POP 아이돌이 나오면 솔직히 별로였어요. 무대가 타 가수들에 비해 너무 이질적이고, 카메라도 무대와 어울리지 않게 보여주고, 서로가 서로에게 어색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그런 게 전혀 없었단 게 놀라웠습니다. 잘 어울렸어요.
더불어서 제가 K-POP 여자 아이돌 무대를 싫어한 이유 중 하나가 춤과 복장이 지나치게 선정적이어서 품위가 없었다는 건데요. 발전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엔 그렇진 않더군요. 좋은 변화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홍백의 백미는 요아소비의 '아이돌(アイドル)'이었습니다.
전 '아이돌'이란 곡을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가사는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출연한 유명 아이돌들이 모두 나와서 함께 무대에서 춤을 추는 걸 보니까 노래 가사가 참 빛나더라구요. 아마 요아소비 본인도 아이돌을 이 정도 멤버와 함께 부를 일은 앞으로도 거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 YOASOBI - アイドル가사 [새 창]
아무튼 이제 와서 새삼스럽지만 잘 만든 곡이다 싶었네요^^; 아이돌들도 노래 가사를 알았다면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요. 이건 여러 의미에서 괜찮은 무대였습니다.
작년 무대에서 봤던 나니와단시(なにわ男子) 같은 그룹은 자신들만의 색이 있어서 좋았는데 자체적인 발전도 계속 하면 좋겠네요. 노키자카46은 이제 완전히 자기 색을 구축한 것 같았지만, 새로 등장하는 일본식 아이돌들은 아직 뭘 하고 싶은지 정확히 모르겠단 느낌이네요. 아라시나 모닝구 세대는 이제 안 나오나 싶군요. 사건도 꽤 있었던 것 같고... 다 떠나서 시대를 따라가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번 홍백가합전은 시청률 31%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는데, 몇몇 이유 중 하나로 옛 자니스 아이돌(아라시 등)이 안 나온 걸 꼽기도 하더군요. 참고로 홍백은 60년대에는 80% 정도의 시청률을 자랑했고 2000년대에도 50%에 가까웠습니다. 2010년대에는 40%대를 유지하다가 계속 하락 중입니다. 시대의 흐름이죠.
그 외에도 미시아나 시이나 링고씨도 반가웠고요. 전체적으로 아이돌 외의 가수들이 힘이 빠졌달까 무대의 포커스가 안 맞춰졌달까... 혹은 늙었달까요. 분발했으면 좋겠군요. 사회자로 나온 하마베 미나미도 반가웠습니다.
아무튼 오랜만에 아이돌 무대들을 봤네요. 내년은 이러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저도 어렸을 땐 간간이 TV 음악 방송을 봤는데 아이돌판이 되면서 안 보게 된 거라... 홍백은 계속 보고 싶군요ㅠ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