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쯤 대충 '세계를 간다' 같은 방송에서 '모로칸 민트 티'라는 걸 봤습니다.
잠시 배경 지식을 설명하면, 보편적으로는 마그레비 민트 티(Maghrebi mint tea)라고 부르는 차로, '모로코'란 말에서 엿볼 수 있듯 북아프리카에서 널리 마시는 녹차입니다. 18-19세기에 영국인에 의해서 도입되었고, 지금은 독자적인 문화로 발전해서 북 아프리카 사회에 완전히 정착했다네요.
차의 본체는 중국 녹차의 일종인 주차(珠茶)이고, 영어로는 잎이 말린 모양이 화약을 닮았다 해서 건 파우더 티(Gunpowder Tea)라고 부릅니다.
기본적인 레시피는 녹차(주차)에 끓는 물, 생 민트 잎, 설탕을 넣고서 우립니다. 계절에 따라서 민트 잎이 다른 종류의 잎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하고요.
이미지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oroccan_Mint_Tea.jpg
Moroccan Mint Tea, by Tola Akindipe, CC BY-SA 4.0
주전자에 민트 잎을 넣은 후 따라 마시는 게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만,
비주얼을 위해 유리컵 버전으로...
차는 원래 어렸을 때부터 마시면서 자라서 관심이 있는 분야인데, 최근에 영국에서 직구할 일이 생겨서 입수했습니다. 무려 한 지역을 평정한 종류의 차라니 기대감이 높았죠.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오설록의 모로칸 민트 티와 TWG를 비교하게 됐습니다.
제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게 오설록 모로칸 민트 티라서 몇 주 전에 마셔 봤거든요. 별로 매력적이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일로 영국 직구를 하게 돼서 TWG 모로칸 민트 티로 재시도 해 본 거였죠.
그럴싸한 구도로 만들었지만,
사실 제가 티 소믈리에도 아니고 둘의 우열을 가릴 자격은 없습니다.
그냥 제 개인 취향대로의 평입니다.
(참고로 저는 중국 청차를 가장 잘 압니다.)
TWG는 95도에서 3~4분.
오설록은 90도에서 3분입니다.
오설록부터 이야기하죠.
의외로 오설록이 색이 더 진합니다. 민트향이 살짝 나지만 그렇게 풍부하진 않고요. 묘하게 구수합니다. 곡차나 꽃차처럼요.
맛은 꽤 심심한데, 첫 인상을 한 마디로 하면 '민트향이 나는 카모마일 티'였습니다. 따뜻할 때는 민트향이 상당히 적고, 구수한 맛이 주를 이룹니다. 구수한 맛도 그렇게 맛있진 않기 때문에, 솔직히 제 취향은 아닙니다.
의외인 건 식으니까 민트향이 꽤 강해지더군요. 미지근한 온도에 가까워지면 한 입을 마시면 입 전체를 민트향이 감쌉니다. 이때부터는 본격적인 '민트 티' 같은 맛이에요. 그리고 약하게 묘한 단맛이 깔려 있습니다. 강하진 않아요.
개인적으로 이 차는 계속 사서 마실 정도로 매력적이라고 느끼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실망한 가장 큰 이유가 있는데요. 녹차의 풍미가 없습니다. 제가 못 느끼는 건지 안 들어 있는 건지 없어요.
모로칸 민트 티는 어떤 자료를 봐도 '녹차'가 본체입니다. 민트와 설탕을 넣은 녹차죠. 민트는 다른 걸로 바뀔 수도 있고요. 그런 점에서 오설록 쪽은 뭔가 '민트 티'를 마신 느낌이지, '모로칸 민트 티'를 마신 느낌은 아닙니다.
제가 모로코에 가 본 적이 없어서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요.
사실 여름이라 오랜만에 차를 탔더니 물을 좀 많이 한 것 같아서
다시 타서 마셔봤습니다-_-;
TWG의 경우는 색이 원본(?)보다 많이 연합니다. 아마도 영국인 취향이 반영되지 않았을까 예상하는데요.
깜짝 놀랐던 건, 티백 포장을 찢는 순간부터 폭발적인 민트향이 났고, 차를 우리는 과정에서도 풍부한 민트향이 퍼졌습니다. 오설록 민트 티가 심하게 간섭 받을 정도라서 다른 방에 가서 마셨을 정도입니다.
맛은 재밌었는데요. 한 마디로 하면 '민트향이 나는 녹차'입니다. 어찌 보면 그대로네요. 한 마디 더 하면, '민트의 녹색 맛과 녹차의 녹색 맛이 결합한 맛'입니다. 식물 같은 파릇파릇함이 강조되는 게 재밌네요.
강한 민트향 뒤에는 녹차와 결합된 녹색 파릇함이 강조되고, 끝에는 녹차 특유의 쓰고 떫은 맛이 대비되어 느껴집니다. 뜨거울 때부터 맛있고요. 신기한 건 마실 때보다는 향으로 맡을 때 민트향이 더 강합니다. 설탕은 알아서 넣으라는 건지 단맛이 없었습니다.
솔직히 제 취향의 차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만, 나름의 매력이 있습니다. 결국 돈 주고 계속 살 의지가 생기냐의 문제잖아요. 이건 매력이 있습니다. 어쩌면 계속 마시다 보면 정 들어서 나중에 다시 살지도 모르겠어요.
이번에는 설탕을 안 넣었지만 다음에는 넣어서 마셔 봐야 겠습니다.
※ 두 번째 우린 거에 설탕을 넣어 봤습니다만, 민트랑 단맛이 상승 작용을 하네요. 맛있습니다. 뒷맛은 여전히 녹차인데 단 게 신기하군요. 다음엔 처음에 우린 거에 넣어 봐야겠습니다.
결론적으로,
TWG는 첫 맛으로 강한 민트향이 나는 녹차이고,
오설록은 구수한 맛이 지배적인 민트 티란 느낌입니다.
TWG는 첫 맛에 강한 민트향이 느껴지면서 콧속으로 들어 왔다가 사라지고,
오설록은 온도가 낮아지면 은근한 민트향이 진해지면서 입 속에 남습니다.
저는 TWG가 훨씬 좋았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TWG 티백은 면포를 쓰더군요. 영국에서 직구해서 그럴 것도 같은데 처음 봤습니다. 신선하네요.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와서 그런지 원래 그런 건지 TWG는 가루가 많이 떨어졌습니다. 맛이 불쾌하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직접 만들어 보고 싶기도 한데, 한국에서는 주차(珠茶)를 구하기가 어렵고, 구한다고 해도 아마도 차와 민트의 원산지가 다르니 맛이 다를 것 같아서 시도해 보기가 그렇군요. 현지에서 마셔 봐야 기준이 생기는데 말이죠.
그냥 기회가 있어서 안 하던 차 시음기나 올렸습니다. 며칠 좀 아파서 늦어졌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