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열량의 단위에는 칼로리(calorie)가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 속 성분도 칼로리로 환산이 가능하다. 단백질 1g은 약 4 kcal, 지방은 9 kcal, 탄수화물은 4 kcal, 그리고 술에 들어 있는 알코올(에탄올)은 7 kcal이다. 칼로리로 환산된 열량이 몸에 전부 흡수되는 것도 아니고 전부 에너지로 쓰이는 건 아니지만, 열량으로 환산했을 때는 저렇게 된다.
술 안의 에탄올에도 열량이 있고, 우리 몸에서 에너지화된다. 재미있는 건 최근 약 10년 동안 이런 얘기를 종종 들어왔다.
"술에 들어 있는 칼로리는 가짜 칼로리라서 마셔도 살이 찌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틀린 말인데,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 1. 엠프티 칼로리(empty calories)
엠프티 칼로리라는 개념이 있다. 한국어로 빈 칼로리라고 얘기하기도 하고. 최근의 소문에선 가짜 칼로리라는 괴상망칙한 거짓 명칭도 생겼다. 엠프티 칼로리란 게 대체 뭘까?
엠프티 칼로리(empty calories)란, 우리가 현대에 가치있게 여기는 영양 성분인 단백질, 무기질, 섬유소, 비타민, 필수 지방산이 없거나 거의 없지만 열량은 높은 것을 이야기한다. 거의 순수한 에너지원. 다시 말해서 영양가가 없고 열량만 높은 종류의 음식이 엠프티 칼로리다.
🍸 2. 엠프티 칼로리 식품
엠프티 칼로리의 대표적인 형태가 셋 있다.
① 설탕 : 순수한 에너지로 대표적인 빈 칼로리 식품. 정제된 시럽류도 포함된다.
② 일부 지방 종류 : 중성지방, 마가린, 쇼트닝, 식용유 등.
③ 알코올 : 술에 들어 있는 에탄올.

설탕. 엠프티 칼로리 식품의 대표자.
주요 영양소가 없으면서 열량이 높은 형태의 식품은 전부 엠프티 칼로리 식품이다. 사탕, 꿀, 엿, 콜라, 사이다 등등.
이쯤 되면 뭘 말하고 싶은지 다들 아셨을 거다. 술을 마시는 건 설탕을 퍼먹는 것과 열량면에서는 같은 개념이다. 술이 살이 안 찐단 얘기는 설탕이 살이 안 찐단 얘기와 같은 것이다. 술 마셔도 살이 안 찐다고 주장하면서 엠프티 칼로리란 용어를 쓰면 그럴 듯해 보이고 왠지 신뢰하고 싶겠지만, 사실 용어의 뜻을 잘 모르고 쓰고 있는 거다. (알코올성 지방간이란 용어는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오해가 생길만 한 이유가 있다. 순수한 열량은 우선적으로 소모되어서 지방으로 전환이 잘 안 되니까.
🍸 3. 영양소와 에너지
우리가 영양소를 얘기하면서 단백질 4kcal, 지방 9kcal, 탄수화물 4kcal라고 설명하지만, 이런 영양소들이 모두 열량으로 전환되는 건 아니다. 단백질과 지방은 몸을 구성하는 주요 재료이며 대사에도 활용된다. 각종 비타민은 촉매로 쓰이고, 무기질은 이온 채널을 이용한 대사 등에 활용된다.
실상 주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건 탄수화물(당) 뿐인데, 엠프티 칼로리로 분류되는 식품도 이런 주 에너지원에 속할 수 있다. 대표적인 엠프티 칼로리 식품인 설탕은 탄수화물과 마찬가지로 포도당으로 분해되어 에너지로 즉각 활용된다. 술에 들어 있는 에탄올도 마찬가지로 알코올 분해 과정을 겪은 후 최종적으로 물과 이산화탄소, 그리고 에너지로 변환된다. 특히 알코올은 설탕보다도 우선적으로 에너지화된다.
이렇게 에너지화되어서 소모되는 양이 많기 때문에 엠프티 칼로리 식품을 살이 찌지 않는다고 오해를 한다. 하지만 설탕을 먹으면 살이 안 찌는가? 아주 잘 찐다. 현대인 비만의 주범 중 하나가 달달한 음료수이지 않나.

술과 함께라면 이런 샐러드를 먹어도 다 살이다.
저기 넘쳐나는 지방(치즈, 드레싱, 올리브)과 설탕(토마토)을 보라.
다이어트를 하는 정석은 탄수화물을 줄이는 것이다. 이것은 에너지를 줄여서 몸에 저장된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방법이다. 그런데 반대로 에너지가 많으면 어떨까? 설탕을 먹거나 술을 마셔서 에너지가 남아돌 경우, 같이 먹은 다른 것들 중 저장할 수 있는 건 전부 몸에 저장을 한다. 남는 에너지의 일부도 지방으로 변환할 수 있다. 한국의 음주 문화는 안주를 많이 먹는 방식인데, 술과 같이 먹은 음식은 설탕을 같이 퍼먹은 것처럼 몸에 아주 잘 저장된다. (더불어서 술은 간의 지방 분해 능력을 저하시킨다.)
이건 그렇게 길게 설명할 문제가 아니다. 그냥 설탕을 먹는 것과 술을 먹는 건 열량면에선 매우 유사한 개념인 것이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
🍸 4. 결론 : 술 마시면 살찐다.
글이 너무 짧아서 길게 쓰려다 보니 다이어트 얘기를 하고 있길래 다 지우고 짧게 요약하기로 했다.
엠프티 칼로리란 열량이 매우 높고 다른 영양가(단백질, 무기질 등)가 없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식품으로 설탕이 있다.
술을 마시는 건 영양면에서는 설탕을 먹는 것과 같다.
(참고로 당이랑 분해되는 방식이나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에 저혈당/당뇨 환자분들은 같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여담인데 오늘날 엠프티 칼로리 식품이 죄인처럼 여겨지는 게 참 재미있다. 불과 백 년도 지나지 않은 못 살던 시절만 해도 꿀이나 설탕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명약으로 여겨졌는데 말이다. 시간과 함께 가치가 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실제로 관심분야에서 확인을 하게 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 추가 : 엠프티 칼로리가 그냥 사라지는 휘발성 에너지(소문의 표현을 그대로 썼다)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에너지화된 칼로리는 우리 몸의 세포에서 에너지로 쓰인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체온을 유지하고 호흡하고 심장이 뛰고 근육을 움직이는 모든 일에 열량이 소모된다. 생각을 하는 것조차 에너지 소모다. 엠프티 칼로리나 탄수화물/당이 전환된 열량은 이런 생존에 우선적으로 쓰이는 거지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