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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물의 마법과 과학 |
오늘 연재는 SF 카테고리에서 지난 번에 연재한 [ 현대 과학과 21세기 ]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카테고리가 여럿으로 나뉘어 있는 것에 대해 고민을 좀 많이 했었는데 지금 상태로 가기로 했습니다. 하나로 합치면 너무 혼란스러울 것 같아요.
0. 들어가며 : 판타지의 마법은 비과학적일까?
웹소설을 읽다 보면 판타지 세계의 마법과 지구의 과학을 완전히 서로 다른 대립 구도로 설정해둘 때가 많다. 마법 vs 과학이라거나 마법 vs 기계라거나. 이건 올바른 구도일까? 마법이란 게 비과학적인 분야일까?
이건 과학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묘사라고 할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과학'의 정의 :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 넓은 뜻으로는 학(學)을 이르고, 좁은 뜻으로는 자연 과학을 이른다.
'마법'의 정의 :
마력(魔力)으로 불가사의한 일을 행하는 술법.
※ 참고로 마력은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힘이란 뜻이다. |
마법이 '마법'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떤 설명할 수 없는 특수한 힘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을 해야 한다. 설명할 수 있는 법칙은 과학의 영역이다. 판타지 웹소설의 마법 아카데미를 보자. 자연에 존재하는 마나를 이용해서 보편화된 법칙을 배워서 정해진 형태의 마법을 누구나 똑같이 쓰는 것은,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고 이용하는' 과학일까?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을 행하는' 마법일까?
1. 규칙이 증명되고 누구나 쓸 수 있으면 과학의 영역
사실 한국/일본 판타지의 웬만한 마법이나 그와 유사한 능력들은 전부 '과학'에 포함되는 개념이다. 과학이란 자연의 규칙을 찾아내서 증명한 것이다. 판타지 웹소설의 마법은 마나라는 힘을 어떤 공식이나 규칙, 계산 등에 기반해서 가공해서 목표한 효과를 발생시킨다. 이렇게 규칙이 있고 누구나 재현할 수 있는 건 과학 법칙이다.
물을 냉동실에서 얼음으로 얼리는 것은 마법이 아니다. 판타지에서 규칙화된 마법을 이용해서 만든 '아티팩트' 상자에 물을 넣었을 때 얼음이 되는 건 불가사의한 일인가 과학인가? 이론대로 회로를 설계해서 전기를 흘려보내면 전자장치가 작동한다. 이론대로 마법진을 그려서 마력을 흘려보내면 마법이 작동한다. 이해하고 있는 법칙인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인가?
판타지 소설의 마법은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고 규칙화해서 누구나 재현할 수 있는 '과학'이다. 물론 두 세계의 용어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지구에서 쓰는 '마법'이란 단어는 있을 수 없는 불가사의한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판타지 세계에선 '마법'이란 단어가 '마나를 다루는 기술'을 말하는 아예 다른 뜻일 수 있다. 서로 언어도 다를 테니까!
하지만 21세기의 현대 지구인의 시각으론 판타지의 마법은 자연의 규칙을 공식화한 확실한 과학에 해당한다. 판타지 세계로 이동한 지구인에게 '규칙이 밝혀진 마나 제어 기술'은 비과학적인 영역이 아닌 것이다. 즉, 판타지 마법은 과학의 대척점일 수는 없다.
21세기 지구에서 사용하는 '마법'과 '과학'이란 뜻을 적용했을 때, 판타지 세계나 현대 판타지 헌터물 등에 나오는 '마법', '초능력' 등은 존재를 증명하고 규칙을 찾았으며 재현할 수도 있으니 전부 과학적으로 증명된 개념이라고 봐야 한다. 그에 따라 당연히 과학 지식이 된다.
2. 과학이 아닌 마법도 있다.
전통적인 판타지를 보면 마법사는 현자나 예언가에 가깝다. 미래를 보는 이유를 아무도 모르고 신비롭기만 하다. 정확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서 환상인지 예지인지 애매하다. 그 세상 전체에 예지 능력자가 존재가 없거나 거의 없다. 능력을 증명하려하거나 남에게 드러내려하면 능력을 잃을 수도 있고, 혹은 증명되지 않는다. 이런 건 과학이 아니다.
조금 더 본격적인(?) 판타지에도 비슷한 예들이 있다. 마법사의 수가 극히 적고, 마법사 자신들도 마법에 대한 법칙을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간혹 있다. 마법을 쓸 수 있게 되는 어떤 계기나 여러 방법이 있는데, 잘 모르는 와중에 그 중 얻어 걸리는 식이라거나. 본인들은 마력을 사용한다고 믿지만 그 이론과 실체가 불분명하다거나. 그런 와중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 살며 증명되지 못하는 경우는 과학과 마법의 경계가 애매하다. 현대 지구에도 유령을 봤다고 확고히 믿는 사람들이 있다. 당사자들에게는 증명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혼자만 경험했고 재현할 수 없는 건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다.
과학은 실험으로 증명하고 누구나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실재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 존재를 증명하려는 순간 증명이 안 되면 과학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어떤 소설에선 마법의 존재는 증명됐는데 법칙화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마법이 있는 건 확실하다. 그런데 똑같은 걸 배워도 결과가 다르고, 결과가 균일하지도 않고 신비롭다. 개인의 정신이나 심상 영역이란 비정형화된 개념과 관련되어 있다거나... 그래서 같은 마법을 써도 마법사마다 다른 효과가 나온다거나... 이런 건 과학적으로 존재는 증명되었지만, 규칙은 아직 증명되지 못한 경우다. (과학의 영역에 들어가 있긴 하다.)
3. 현대 지구에 판타지의 마법이 등장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어느날 판타지 웹소설의 마법이 뿅 하고 등장해서, 원리가 밝혀지고 마법을 쓸 수 있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일단 과학자들이 마법을 사용하는 실험을 하고 재현을 해서 존재를 증명할 것이다. 이때부터 과학에 포함된다. 마나를 측정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고 마법진과 주문의 규칙성을 파악할 것이다.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이 갱신되어서 마나가 새로운 입자로 등록될 것이고, 4대 기본 힘에 마력이 추가되어 5대 힘이 될 것이다.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Standard_Model
현재의 표준 입자 모형.
이 모형도는 아직 세상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21세기 현시점의 과학의 한계다.
입자가속기에서 마나를 충돌시켜서 마나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연구할 것이며, 학교와 교육기관에서 과학의 새 분류를 만들어서 공식적으로 가르칠 것이다. 응용과학과 공학에서는 마나를 기존의 기술과 접목시켜서 마나를 이용한 발명품이나 기계, 무기들이 나올 것이다. 실제로 많은 현대 판타지 소설이 마석을 이용한 마나 발전 시설을 만들지 않나.
그리고 이런 과정을 행할 수 있다면 그걸 누구도 '마법(불가사의한 일)'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마나'라는 입자명은 살아남을지도 모르지만, 밝혀진 법칙은 마법이 아니다. 옛 과학자들은 과학(자연철학)이란 신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묘사했다. 신의 실존이 증명된다면 신은 과학의 영역에 들어갈까? 그럴 것이다.
4. 마치며...
미국의 유명 드라마 '스타 트렉' 시리즈를 보면 텔레파시는 과학으로 규명된 영역에 들어간다. 심지어 어떤 외계 종족은 텔레파시를 빛의 구체로 만들어서 적을 향해서 쏜다. 작품 내에서 원리가 규명된 능력이나 현상들은 기존의 SF 작품들도 이미 과학의 영역으로서 다루고 있다.
영국의 유명한 과학자이자 SF 작가인 아서 C. 클라크는 '충분히 발전된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Any sufficientl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라는 말을 했다. 판타지에서 손전등을 보고서 마법이라고 착각하는 일화가 자주 나오는데 중세라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런데 손전등의 빛을 '마법'으로 여길 수 있는 이유는, 과거의 사람들은 손전등의 원리를 몰랐기 때문이다. '불가사의'한 영역이기 때문에 마법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법칙이 규명되는 시점에서는 더 이상 마법이 아니게 된다. 판타지의 마법도 그렇다.
물론 웹소설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인간이 손에서 불을 쏘고 얼음을 만드는 행위을 과학이라고 부르는 게 더 혼란스럽기는 하다. 지구와는 다른 세계에서 그게 '마법'이란 다른 뜻의 단어라고 불릴 순 있겠지. 문제는 자꾸 지구인이 판타지 세계에 가서 규칙화된 마법을 보고 '과학이 아니다'라고 묘사하는 것에 있다. 현대 과학의 정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묘사라고 할 수 있다.
추가로 좀 더 이야기하면, '과학 = 기계' 그리고 '과학 VS 자연' 이라는 식의 묘사가 등장할 때도 있다. 과학은 자연의 법칙을 말한다. 기계보다 훨씬 넒은 의미다. 그리고 기계도 자연을 모방하고 자연의 법칙을 이용한 것인데 '자연 VS 기계'의 구도가 성립하는지 자체가 의문스럽다. 솔직히 이런 묘사는 설득력 있는 설정이 없다면 너무 극단적이다.
※ 부록 : 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마법은 '마법(불가사의한 행위)'이라고 불릴까?
이유는 소위 말하는 마술사, 마법사 들이나 전해지는 마도서, 마법 이론 들이, 실제로 실험을 했을 때 하나도 존재를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마법사가 실험에 참가한 건 아니겠지만, 실험에 참가한 모든 마법사, 초능력자, 영능력자 들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마법'은 불가사의한 미신의 영역이자 존재하지 않는 영역으로 남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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