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SF에서 종종 사용되는 '시간과 속력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SF의 가장 기초적인 개념이면서도, 사실 많은 SF 작품들이 '지키고 싶어 하지 않는' 개념이기도 하죠. 실제로 잘 지키지 않고요.
1.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
흔히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평등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실 시간은 평등하지 않다. 모든 사람, 모든 물체의 시간이 다르게 간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사람이 어디에 있고 어떤 상태로 있는지에 따라 시간은 다르게 간다.
과거에는 시간이란 게 절대적인 줄 알았다. 세상에 시간이란 절대적인 흐름이 있어서 1초가 흐르면 세상 전체가 1초만큼 나아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등장하고서 이게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은 이 세상에서 균일하게 흐르는 절대적인 값이 아니었던 것이다.
'상대성의 원리'라는 말을 보자. 상대적인 성질에 대한 원리라는 뜻이다. 상대성 이론은 우리가 절대적인줄 알았던 온갖 것들이 사실은 상대적인 개념이었다는 이론이다. 그리고 시간이 서로 다르게 가는 것을 '시간의 상대성'이라고 이야기한다.
2. 상대 속도
그런 걸 이야기하기 이전에, 먼저 초등학교 때 배운 것을 간단하게 짚어 보자. 상대 속도의 이야기다.
어떤 자동차 A가 시속 100km로 달리고 있다. 이 자동차 A의 속력은 가만히 밖에서 서 있는 사람이 보기에는 시속 100km이다.
그런데 그 자동차와 같은 방향으로 시속 90km로 달리는 차 B가 있다고 해 보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차 A가 차 B를 천천히 앞지를 것이다.
이때 B에 탄 사람이 A를 보면, A는 B를 기준으로 시속 10km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관찰자가 누가 되냐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속력이 변한다. 이것이 상대 속도다. 우리 모두 (아마도) 초등학교 때 배웠다.
3. 광속 불변의 법칙
이제 조금 더 재미있는 것을 보자. 빛의 속력, 광속은 초속 30만km이다. 지구에서 C라는 사람이 빛을 보고 있다고 쳐 보자. C가 보기에 빛은 역시 초속 30만km이다. 그리고 이때 빛을 쫒아서 같은 방향으로 날아가는 우주선 D가 있다고 쳐 보자. 이 우주선은 C가 보기에 광속의 50% 인 초속 15만km로 날아가고 있다.
여기서 문제 : 우주선 D가 빛을 관찰했을 때 빛의 속력은 초속 몇 km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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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초속 30만 km다. 소제목에서 예상하셨듯이 빛의 속력은 변하지 않는다. 초속 15만 km로 날아가고 있는 우주선 D가 빛을 봤을 때도, 광속은 변함 없이 초속 30만 km이다. 이유가 뭘까? 그게 우주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광속(光速)은 누가 바라보든, 관측자가 얼마나 빨리 움직이고 있든 상관없이, 항상 초속 30만km로 관측된다.
그런데 이상함을 느끼셨을 거다. 지구 위에 있는 C가 빛을 볼 때도 초속 30만 km이고, 빛을 쫒아 절반의 속력으로 날고 있는 D가 볼 때도 똑같이 초속 30만 km라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두 사람이 같은 빛을 보고 있고, 두 사람이 다른 속력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바라보고 있는 빛의 속력은 같다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4. 시간이 느려진다(Time Dilation)
우주선 D에 탄 사람은 초속 15만 km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30만 km/s - 15만 km/s = 15만 km/s]로 빛은 절반의 속력으로 가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하지만 빛은 똑같이 30만 km/s로 이동하고 있다. 이 '괴리'를 보정하는 것이 시간이다. 우주선 D에 탄 사람의 시간이 주위보다 느려지는 것이다.
여기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D가 느끼는 시간이 느려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C(관측자)가 보는 D의 시간이 느려지는 것이다. D 스스로가 느끼는 시간은 변함이 없다. 상대성이란 관측자를 기준으로 한 상대성을 말한다.
우주선 D가 느끼는 시간은 같지만, 외부에서 보면 D는 느려졌다. 얼마만큼? 빛의 속력을 따라잡은 만큼 느려진다.
이제 반대로 생각해 보자. 밖에서 볼 때 D의 시간이 느려졌다는 것은, D가 보기에는 밖의 시간이 빨라졌다는 거다. 그 말은 D가 바라보고 있는 빛의 시간도 빨라졌다는 거다. 그러니 D가 초속 15만 km만큼 빛을 따라잡았다고 하더라도, D가 보기에 외부에 있는 빛의 시간은 더 빨라져서 따라잡은 만큼의 속력을 상쇄시킨다. 그래서 빛의 속력은 누가 관측해도 항상 초속 30만 km로 고정되어 있다.
이것을 광속 불변의 법칙, 혹은 광속 불변의 원리라고 한다. 시간이 느려지는 현상을 시간 지연 혹은 시간 팽창이라고 부른다. 아인슈타인이 우리가 우주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꿨다고 말하는 이유가 감이 올 것이다.
5. 시간의 상대성 : 모든 사람과 물체의 시간은 서로 다르게 간다.
시간의 흐름은 누가 관측하냐에 따라서 상대적이다. 이걸 시간의 상대성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당사자가 느끼는 시간'은 변하지 않는다. '밖에서 관찰하는 시간'이 변한다.
이 현상은 빛을 따라갈 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 언제나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서 있는 사람보다 걷는 사람의 시간이 느리게 간다. 걷는 사람보다 버스를 타고 가는 사람의 시간이 느리게 간다. 기차를 탄 사람의 시간은 버스를 탄 사람의 시간보다 느리고, 비행기를 타면 기차보다 느려진다. 모든 사람은 매 순간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왜 이걸 아무도 몰랐을까? 우리가 빛에 비해서 너무 느리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우주에서 빛의 속력는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광속을 기준으로 물리 현상을 관측하면 우리가 살면서 눈으로 보던 것과 다른 결과가 나올 때가 많다. 하지만 이 기준은 광속, 즉 초속 30만 km(=시속 10억 8천만 km)에 대한 비율로 나타나기 때문에, 고작 시속 100km, 비행기라 할지라도 고작 시속 500~900km 정도의 속력에서는 인간의 감각으로 감지할 수가 없다.
하지만 원자 시계 같은 아주 정밀한 시계로 측정을 할 경우 비행기를 타고 가면 시간이 실제로 느려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비행기 파일럿은 실제로 다른 사람보다 아주 아주 조금 더 천천히 늙는다. 그 시간은 평생 동안 1초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짧지만...
우리가 지구란 별 안에서 살면서 느끼고 관측하는 많은 물리적인 성질은, 우주에 비해서 너무 규모가 작기 때문에 정확하게 관측되기 어렵다. 뉴턴으로 대표되는 과거의 물리학을 '고전 물리학'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지구 위에서 벌어지는 일을 일반화 시킨 것이라 정확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뉴턴 물리학을 가르치는 이유는 보통 사람이 지구 안에서만 상식 선에서 써먹기에는 굉장히 편리하기 때문이다.
6. 마치며...
재미있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상대성 이론을 배우고서 SF에 빠지는 것은, 우주가 우리가 느끼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경이로움이 분명 작용한다. 그 중에서도 광속과 시간의 관계는 정말 많은 SF 작품들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소재이다. 개인적으론 그 중에서 역시 '톱을 노려라'가 가장 좋았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아광속 비행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가족과 친구만이 먼저 늙어가는 이야기인 '톱을 노려라'.
GAINAX, 1988년 作.
시간의 상대성에서 착각하기 제일 쉬운 것은, 당사자가 느끼는 시간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찰자가 보기에 시간의 변화가 보이는 것이지, 당사자가 느끼는 시간의 속력은 항상 같다.
이걸 이용해서 미래로 시간 여행도 가능하다. 그냥 엄청 빠른 우주선을 타고서 움직이다가 내리면 주변의 시간이 훨씬 빨리 지나간 상태로 미래가 되어 있을 테니까. 과거로 가는 시간 여행이 현재의 이론으론 불가능한 것에 비해서 미래로의 시간 여행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단지 아직 그 정도로 빠른 물체를 인간이 만들지 못할 뿐이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는 냉동인간이 돼서 불치병을 고쳐 보겠다는 부자들 말고, 미래로 시간 여행을 해서 불치병을 고쳐 보겠다는 부자들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글에서 느끼셨겠지만, SF 연재에서 상대성 원리 같은 이론 자체를 제대로 길게 전부 설명할 생각은 없다. 과학 이론을 설명하기보단 창작물에서 이런 이론도 나온다는 관점으로 쓰는 글이기 때문이다. 단지 오늘은 카테고리 초반의 기초 쌓기의 일환으로 소재 자체보다는 이론 얘기를 가볍게 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