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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교회 (1) : 중세인의 삶과 교회
 

0. 들어가며...

이전 연재에서 교회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세 번 정도는 이야기한 것 같다. 중세라는 시대가 기독교에 엄청난 영향을 받고 있었단 사실을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늘은 중세 교회와 중세인의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겠다.

중세의 교회를 많은 분들은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종교 단체'라고 생각하실 것 같다. 그런데 중세인의 삶을 파고 들어가 보면 교회는 종교 단체라기보다는 오히려 국가 행정기관에 가까웠다.

중세엔 국가나 종교라는 개념 자체가 지금과 달랐다. 국가는 왕 개인의 소유물이었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귀족이 아닌 대다수의 사람에 관심이 없던 시대에 민생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것은 어떤 의미에선 교회였다.




1. 교회와 서유럽

4세기에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었고, 통치 영역에 교회들이 본격적으로 세워졌다. 그 후 5세기에 로마 제국이 멸망했다. 제국은 멸망했지만 교회는 남았다. 통치력을 잃어버린 땅의 여러 종류의 행정 사안은 교회를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로마 멸망 최후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게르만족의 대이동이었다. 서유럽 전역에 수많은 게르만 일파가 퍼져서 각자의 세력을 만들었다. 대부분은 멸망했으나 프랑크 왕국은 9세기까지 성세를 이루며 우리가 아는 '중세 유럽'의 기틀을 만들었다. 프랑크 왕국이 그럴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기독교를 꼽는다. 프랑크 왕국을 세운 클로비스가 기독교로 개종하며, 교회 세력과 민중의 지지를 얻고, 로마의 문화 역시 빠르게 흡수한 것이다.

프랑크 왕국은 교회의 재산을 이용해서 권력의 기반을 다졌고, 교회는 그 틈을 노리고 권력 속으로 파고 들었다. 한편 7세기 스페인 지역에서 왕을 축성하며 신성화시키는 전통이 부활했고, 8세기 프랑크 왕국에서도 피핀이 축성을 받으며 왕권을 신성화시키는 전통을 부활시켰다. 이로서 서유럽의 왕은 신의 명분을 얻었고, 교회는 자신들을 지킬 방패를 얻었다.

8세기 말, 샤를마뉴 대제는 전국에 산재해 있는 수도원들을 일종의 행정기관으로 삼아서 대규모 개혁을 감행했다. 프랑크 왕국 최대 성세였던 이 시기를 '카롤링거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프랑크 왕국 멸망 후, 교회는 황제 임명권을 주장하며 서유럽 전체에 영향력을 넓혔다. 모든 사람은 기독교인이고, 모든 국가는 기독교 국가였다. 이로써 우리에게 익숙한 중세 유럽이 시작됐다.

이후 교회는 역동적인 변화를 겪었다. 9세기까지는 권력자의 틈에 끼어 들어가서 부패했다가, 10세기부터는 수도원을 중심으로 개혁이 벌어졌고, 그 이후 '교황권'이 확립되고서 굉장히 빠른 속도로 영향력을 키웠다. 12세기 전후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강해졌고, 민생의 전반에 관여하게 됐다. 이런 변화의 역사를 자세하게 다루진 않을 것이다. 이후 말하는 중세의 교회는 이렇게 영향력을 넓인 이후의 이야기이다.




2. 중세인의 일생과 기독교

모든 중세 유럽인은 기본적으로 기독교인이라고 봐도 된다. 갓 태어난 신생아인 상태에서 세례를 받아 기독교에 입교했고, 죽을 때까지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죽음 이후까지도 신에게 의탁을 했으니 말 그대로 모든 것이 기독교의 테두리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럼 중세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기독교적 인생’을 살았을까?



(2-1) 탄생

아이가 태어나려고 하면 귀족이나 기사는 조산사, 의사, 성직자를 불렀다. 중세의 성직자는 당시 의료의 일부를 담당하기도 했고, 임산부와 아이를 위해 축복하고 기도를 할 수도 있었다.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면 보통 당일에, 혹은 며칠 안에 약식으로 세례를 했다.

아기가 가능한 한 빨리 세례를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는데, 이유는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을 경우 착한 불신자가 가는 얕은 지옥인 림보(Limbo)에 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즉,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으면 무조건 지옥에 간다고 믿었다. 당시의 유아 사망률은 매우 높았기에 약식으로나마 빠르게 세례를 했고, 이제 아기는 며칠 안에 죽더라도 지옥에 가지 않게 되었다.
※ 세례가 이루어지는 구체적 시기, 방법 등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독일에서 산모는 출산 후 약 40일 간 집 안에서 휴식을 취해야 했다. 그 기간에 집 밖으로 나가면 불행해질 거란 미신이 있었다. 산모가 회복하면 교회에 가서 탄생에 감사를 드리고 신의 축복을 받는 의식을 치렀다. 세례식 역시 정식으로 성대하게 열렸다. 이 때 아이는 처음으로 이름을 받았다. 벌거벗은 아이를 물에 완전히 담근 후 성향유(聖香油)를 바르고, 입에 소금을 물려주었다. 그 후 흰색 세례복을 입혔다.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Baptism
동방정교회의 세례


세례식에는 하객들과 대부, 대모가 참석했다. 오늘날 평가하기를 대부와 대모라는 시스템은, 교회가 피로 이어진 가족을 약화시키고 기독교도를 한 가족으로 비유하며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서라고도 한다. 대부의 숫자는 부모의 지위에 따라 늘어났다. 세례식의 마지막에는 대부모가 아기를 위해 신앙 고백을 했다. 이제 아기는 기독교인(모든 중세 유럽인) 커뮤니티에 소속되었다.

아이는 이후 7세가 되면 다시 견진성사를 받았다. 이런 풍습은 지역마다 시기마다 조금씩 달라진단 걸 참고하자.



(2-2) 결혼

교회가 관혼상제에 처음부터 모두 관여한 것은 아니다. 결혼에 관여하기 시작한 건 약 8세기부터이며 기독교 결혼식 문화가 정착한 것은 그로부터 몇 세기가 흐른 뒤였다. 전술했듯, 교회의 힘은 대략 10세기부터 강력해지기 시작해서 12세기 무렵에는 굉장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사제가 주관하는 결혼식은 꼭 교회에서 열릴 필요는 없었다. 귀족의 경우 사제가 동참한단 전제 하에서 원하는 장소에서 결혼식을 열었다. 교회에서 결혼식이 열릴 경우, 교회의 안이 아니라 교회의 문 앞에서 진행되었다.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Marriage_in_the_Catholic_Church


이때 서양권엔 오늘날에도 남아 있듯이 "이 결혼에 이의가 있는 자가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읽었던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데, 당시의 이 질문은 진짜로 반대하는 사람이 없냐고 물어본 것이었다고 한다. 어떤 부당함 따위가 있어서 결혼식에 반대할 이유가 있거나, 신랑이나 신부에게 결혼하면 안 될 결함이 있거나 하는 경우 이때가 마지막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기회였다. 무사히 결혼식이 완료되면, 신랑과 신부는 교회 안으로 들어가서 결혼 미사를 보았다.

이혼 역시 교회의 주관이었다. 교회가 이혼 심사를 맡은 이후로 이혼은 중세 초에 비해 매우 어려워졌다. 교회에서 인정하는 정당한 사유, 종교적 이유가 없으면 거의 불가능했다.



(2-3) 1년이란 생활 주기와 기독교

기독교에는 교회력(Liturgical year)에 따른 1년 중의 중요한 종교적 절기가 있다. 간단히 보면 아래와 같다.

11월27일~12월24일 대림절
12월25일~1월6일성탄절
1월~2월연중시기
2~3월경부터 40일간사순절
3~4월경부터 7주부활절
5~6월경부터 11월말까지연중시기


대림절과 성탄절, 사순절, 부활절은 교회 절기에서 굉장히 중요하고 1년 중 큰 의미를 가진 시기였다. 전부 합치면 대략 5달 정도의 긴 시기인데, 이 시기에 종교 행사만 하면서 보통 사람들이 일을 안 하고 노는 건 아니고 지켜야 하는 것들이나 해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가장 유명한 사순절(Lent)은 금식과 기도, 금욕 등을 행하던 시기로 유명하다. 이론적으로 40일 동안 ‘모든 사람’은 금식을 해야 했으며, 노약자 등은 예외로 쳤다. 여기서 금식이란 고기와 유제품을 먹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하루에 한 끼는 생선, 채소, 달걀, 맥주 등을 먹는 게 허용됐다. 이 시기를 사람들은 상당히 힘들어 했다고 한다.

1215년 4차 라테란 공의회 이후 '모든 사람'은 적어도 1년에 한 번 부활절엔 영성체를 받는 것이 의무로 규정되었다. 영성체는 미사 중에 성직자가 축성한 빵을 받는 의례이다. 미사에서 빵과 포도주는 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한다. 그런데 어떻게 '모든 사람'을 파악했을까? 중세의 교회는 행정기관의 역할을 했고, 교회 미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곧 지역 거주자 명부이자 신분의 증명이기도 했다.



(2-4) 축일, 축제, 성인의 날

중세에는 일 년 중 거의 매달 한 개 이상의 축제가 있었다. 예컨대 1월의 주현절, 2월의 성 발렌타인 데이, 3월의 카니발, 4월의 부활절, 5월의 오월제, 6월의 세례 요한 축일, 7월의 가르멜 산 성모 축일, 8월의 성모 승천 대축일, 9월의 미카엘마스, 10월의 할로윈, 11월의 위령의 날, 12월의 크리스마스 등등...

지역마다 시기마다 축제는 다를 수 있다. 수많은 축제가 이교도 기원임은 둘째로 대개의 축제들은 기독교화되었다. 지역의 (기독교적) 수호자나 성자들의 날도 있었다. 중세의 농민들은 따로 생일을 챙기지 않았는데, 자신이 태어난 날과 가까운 기독교 성인의 날 다 같이 생일을 축하했다고 한다.

중세의 축일은 1년에 60일 이상이었다고도 하는데, 시기마다 지역마다 다를 순 있었겠지만 확실한 건 현대인보다 훨씬 공식 휴일이 많았다. 교회에서 지정한 휴일 역시 매우 많았으며, 어떤 시기엔 100일 이상을 쉬는 시기도 있었다고 한다. 괜히 현대인이 역사상 가장 많이 일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2-5) 고해성사, 회개, 순례

1215년 이후 고해성사 역시 1년에 한 번 반드시 해야 하는 행위로 규정됐다. 이는 주임신부의 감독 하에 행해졌는데, 교회는 사람들의 죄를 고백 받는 것으로 신자의 마음에 파고들어 도덕적인 지배력을 발휘하게 됐다. 긍정적으로 보면 민심을 관리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것에 도움을 줬다.

참고로 이런 의무들을 행하지 않을 경우 신자는 살아서는 교회에 발을 들이지 못하고, 죽어서는 (기독교식으로) 땅에 묻히지 못하게 됐다. 교리적으로는 고해하지 않는 죄가 있을 경우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종교 활동과 관혼상제를 관장하는 교회의 영향력은, 비록 간접적이더라도 엄청나게 강력해졌다.

한편 고해와 회개는 별개였다. 회개는 성소에 가서 성유골에 기도를 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는데, 가까운 성소뿐만 아니라 멀리 있는 유명한 성소에 순례를 가길 원하기도 했다.

중세의 순례는 매우 흔한 것이었으며, 일반인들도 평생에 최소한 한 번은 하길 원했다고 한다. 순례자를 위한 길과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멀고 먼 순례길을 가기도 했지만, 많은 경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가까운 곳이라도 찾아갔다고 한다. 순례를 하는 이유는 기도, 회개 등 여러 이유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성물의 힘으로 병을 치료하기 위함도 있었다.



(2-6) 죽음

종교가 가진 가장 강력한 보상은 사후 세계의 구원이다. 기독교 역시 전통적으로 죽음 후 구원 받아 신의 곁으로 갈 수 있을 거란 교리를 내세웠다. 죽음은 아주 오래 전부터 종교의 영역이었다.

그 사람이 종교적이었든 아니었든, 죽음이 가까워지면 대부분 종교를 찾았다. 권력자와 기사는 대부분 교회에 묻혔다. 교회를 건축하기도 하고, 재산을 기부하기도 했다. 말년을 수도원에 들어가서 보내는 경우도 많았다.

죽어가는 사람은 사제와 함께 마지막 의식을 치렀다. 이를 임종기도(the Commendation of the Dying)라고 한다. 먼저 마지막 고해성사를 치르고, 종부성사(Extreme Unction)를 치르며 몸에 성유를 바르고 기도한다. 그 후 사제가 성체를 가져다 주고서 마지막 영성체인 노자성체(Viaticum)를 치른다. 이는 혼자 외롭게 죽는 게 아니라 영생을 약속한 예수가 죽음의 순간 함께 할 거란 의미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에게 대단한 위안을 줬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Anointing_of_the_Sick_in_the_Catholic_Church


가난한 농민부터 왕에 이르기까지, 장례는 교회의 주관이었다. 기독교인이 아니면 (모두가 원하는) 장례식을 치를 수 없었다. 사망 후 30일이 지났을 때 장례식을 열렸다. 그 후 매년 죽은 자를 기렸다. 사후에도 수도원과 교회에서 죽은 자를 기리는 미사가 꾸준히 열렸는데, 그 중엔 사후에 연옥에서 고통 받는 기간을 줄여달라는 의미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유족들이 의지하게 되었다.




부록. 왕과 권력자, 그리고 파문

종교가 강력했던 시대에 '신의 이름'과 '신이 부여한 권리'는 중요한 대의명분이었다. 중세에 '왕'이란 단순히 힘이 강력한 지배자를 뜻하는 게 아니었다. 신이 권한을 부여한 정신적인 지도자였으며, 도유식을 통해서 신성이 부여됐다. 교회의 축복이 모두가 반대하는 자를 왕으로 만들기는 힘들었겠지만, 모두가 지지하는 자조차도 신의 이름 없이는 완전한 왕이 될 수 없었다.

왕의 신성은 '병을 치유하는 왕의 손'에서 잘 드러난다. 중세에서 근대에 이를 때까지, 사람들은 왕의 손에 닿으면 병이 낫는다는 기적을 믿었다. 왕들은 적게는 매년 몇 명 정도부터 많게는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을 '만졌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병에서 나으면 왕의 손을 통해 신성이 발휘된 것이고, 낫지 않으면 병자의 믿음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강력한 권력자의 혈통만을 따지는 게 아니라, 신이 인정하고 부여한 신성 자체를 따진 것이 중세 유럽의 왕이다.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Royal_touch
병자를 만지는 루이14세.


교회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파문(Excommunication)이었다. 위에서 우리는 교회가 개인의 인생에 관여하고 관혼상제를 주관하는 것을 봤다. 파문이란 기독교 공동체로부터 축출된단 의미이다. 파문을 당하면 결혼, 장례식 등 교회가 주관하는 거의 모든 성사를 받는 것이 금지된다.

또한 군주가 파문당할 경우 신하들은 충성 서약을 회수하고 공격할 명분을 가질 수 있었다. 말하자면 파문당한 사람은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인 보물 고블린처럼 변한다. 물론 현실이 이론처럼 '파문당했네? 공격!' 하고 즉각적으로 돌아서는 건 아니지만, 파문을 당하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위태로운 상태에 처하게 됐다.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가 교황과의 서임권 분쟁으로 파문(1076)을 당한 후, 결국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던 카노사의 굴욕(1077)은 매우 유명한 사건이다. 굴복한 이유는 황권이 흔들리고 반역 모의가 계속 되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것으로 금지령(Interdict, 성무 금지)이 있다. 이것은 특정 지역 전체에서 성사를 금지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결혼도, 장례도, 그 무엇도 행해지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금지령을 불러온 자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과 분노는 하늘을 찌르게 된다. 영국의 왕 존(1166-1216)은 금지령과 파문을 당하고서 6년을 버티다가 결국 교황에게 굴복했다. 참고로 세례 같은 정말 중요한 의식에는 예외를 뒀다고 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파문이 형벌이나 협박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파문당했다고 기독교인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며, 참된 회개와 화해로 인도하는 방법이란 것이다. 참 재미있는 핑계이지만, 이 핑계는 파문의 약점이기도 했다. 파문당한 사람이 용서를 빌면 교황은 명분적으로 파문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파문은 직접적이고 영구적인 무기가 되진 못했다.



[2부에 계속...]




fantasy| 2022-09-28 00:00:00 | [Comment(0)]




다음 글은 수요일에 올라갑니다.
 

개인 사정으로 이번 주말 글은 쉬겠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연재도 제대로 시작할 것 같습니다. (__)



freetalk| 2022-09-25 10:29:05 | [Comment(0)]




🥂 연재 - 술 이야기 21 ▶ 주정강화 와인
 

🍸 1. 주정강화 와인이란?

주정강화 와인, 혹은 강화 와인이라고 부르는 술이 있다. 주정(酒精)이란 술에서 알코올을 이야기하는데, 주정강화 와인은 말 그대로 알코올 도수를 높인 와인이다. 발효주인 와인에 증류주를 첨가해서 만드는 종류의 술을 말하며, 영어로는 fortified(강화된) wine이라고 부른다. 지난 연재에서 이야기했던 한국의 과하주(過夏酒)도 이 카테고리에 속하는 술이다.

일반적으로 포도 와인에 포도 브랜디를 첨가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며, 과하주와 마찬가지로 달달한 맛과 특유의 풍미를 가지기 때문에 단순 발효주나 증류주와는 다른 매력을 가진다. 원래 만들어진 기원은 와인의 도수를 높여서 보존력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주정강화 와인(fortified wine)이란 용어가 생소하실 수 있는데, 강화 와인의 대표적인 종류를 들어 보시면 좀 더 익숙하실 것 같다. 바로 포트(port) 와인과 셰리(sherry)이다.



호주에서 구매했던 포트 스타일의 강화 와인.





🍸 2. 강화 와인의 기원

원거리 항해가 가능해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뻗어나가던 대항해시대(15세기~17세기)는 해상 무역의 시대였다. 당시에는 냉장 기술이나 보존 기술이 없었고, 항해 속도는 현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느렸기 때문에, 와인처럼 쉽게 상하는 물건은 순식간에 쓰레기로 변했다.

오늘날 와인은 장기 보존이 가능하단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양조 과정에서 위생이란 개념이 일단 없었고, 오늘날의 와인은 보존제로 이산화황이나 아황산염을 첨가한다. 또한 당시에는 와인을 밀폐가 안 되는 나무통에 담아서 배에 실었으며, 배 안은 굉장히 무더웠다. 이런 환경에서 도수가 낮은 발효주는 순식간에 상해 버렸다.

영국과 프랑스는 백 년 전쟁(1337-1453)을 겪고, 그 이후로도 경쟁 관계에 들어가면서 일부 교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전에 연재한 럼(rum) 역시 그런 배경에서 떠오른 술이었다. 포도로 만든 와인과 브랜디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수출품이었고, 영국 등의 경쟁 국가에서는 종종 수입을 금지하며 대체품을 찾았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지도(https://www.google.com/maps)


그렇게 떠오른 대안이 바로 이베리아 반도의 포르투갈과 스페인 지역이었는데, 당시의 항해 속도는 느렸기 때문에 이 거리를 오가는 것만으로도 와인이 상했다. 대책을 찾던 상인들은 도수가 높아지면 보존력도 올라간단 점에서 착안해서 와인과 브랜디를 섞었으니 16-17세기 무렵의 강화 와인의 탄생이다. 오늘날 강화 와인의 도수는 약 20%vol 전후이다.

강화 와인은 와인에 브랜디를 어느 시점에 붓느냐에 따라서 당도가 달라진다. 발효 중에 섞으면 잔여당이 남아서 달달해지고, 발효가 완료된 후에 섞으면 당도가 낮아서 드라이해진다. 오늘날 강화 와인에는 크게 생산지에 따라 분류되며, 그 안에서도 다시 숙성 방식 등에 따른 종류나, 스위트와 드라이를 오가는 여러 당도 등급이 존재한다.

참고로 주정강화 와인은 주종의 하나로, 특정 제품의 세부 카테고리가 아니다. 일반 와인과는 친척 관계에 있는 별개의 술의 종류라고 볼 수 있다.




🍸 3. 강화 와인의 종류

(3-1) 포트 와인

포트 와인(Port wine)은 포르투갈(Portugal)의 주정강화 와인으로, 강화 와인 중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진 이름이기도 하다. 이름이 포트(port)라서 포르투갈의 약자인 것 같기도 하고, 항구(port)를 뜻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실상은 포르투(Porto)라는 항구 도시의 이름을 딴 것이다.

발효 중 브랜디를 첨가하여 단맛이 남아 있다. 포트 와인 안에는 다시 Ruby, Tawny, White 등의 여러 하위 카테고리가 있다. 제조나 숙성 방식의 차이가 존재하여 맛과 풍미의 스타일이 달라진다.

꽤 여러 나라에서 포트 스타일 강화 와인을 제조하는데, '포트 와인'이란 정확한 이름은 포르투갈산 강화 와인만이 쓸 수 있다.




(3-2) 셰리 와인

이름은 다들 한 번쯤 들어 보셨을 법한 셰리(Sherry) 와인 역시 주정강화 와인의 한 종류이다. 산지는 스페인. 스페인어로 vino de Jerez라고 하는데, Jerez의 영어식 명칭이 Sherry라고 한다.

포트 와인과는 달리 발효가 끝난 후에 브랜디를 첨가한다(하지만 내부 분류에서 다시 당도 차이가 있다). 하위 분류로 다시 Fino, Manzanilla, Amontillado, Oloroso 등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주정강화 와인임에도 아세트산 발효를 시킨 셰리 와인 식초(Sherry vinegar)가 존재한다. 요리에서 꽤 자주 쓰이는 종류의 식초다. 아마도 셰리 와인의 도수가 17도 전후로 낮은 편이라서, 혹은 물로 희석을 한 후에 초산 발효를 시키는 것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드라이 셰리는 중국 요리를 할 때 소흥주의 일부 대용이 될 수도 있다.



(3-3) 마데이라 와인

마데이라(Madeira) 와인은 아프리카의 마데이라 제도에서 만들어지는 주정강화 와인으로, 포르투갈령에 속한 지역이다. 대항해시대에 동인도 제도로 통하는 항로의 중간 기착지였다고 한다.

더운 지역에서 (원래는 본의 아니게) 고온으로 숙성되는 과정을 겪으며 독특한 풍미를 갖게 된 것이 특징이다. 브랜디를 첨가하는 타이밍에 따라서 다양한 당도 등급을 가진다. 또한 Sercial, Verdelho, Bual 등의 하위 분류가 있다.

아마 요리를 좀 해 보신 분에겐 익숙한 와인일 것이다. 신기하게도 꽤나 동떨어진 프랑스 요리에서 소스 등에서 상당히 활용하는 종류의 술이다.



양식 요리에 많이 쓰는 마데이라.
물론 요리가 아니라 음용 목적으로도 마시는 강화 와인이다.



(3-4) 마르살라 와인

마르살라(Marsala) 와인은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의 마르살라라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주정강화 와인이다. 당도, 색상, 숙성 기간에 따라 여러 하위 분류가 있다.

마르살라 와인은 식전주에서부터 요리까지 굉장히 활용이 많이 되는 와인이다. 특히 이탈리아 요리에서 굉장히 폭넓게 사용된다. 한국에서는 매우 구하기가 힘든 편인데, 몇몇 제품은 그나마 구할 수는 있다(아쉽게도 드라이 마르살라는 구하기가 정말 힘들다). 스위트는 디저트에서 넓게 사용되며, 널리 알려진 티라미수에도 사용이 가능하다.



그나마 국내에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아이...



(3-5) 베르무트

베르무트(Vermouth)는 원래 약용으로 사용되다가 식전주로, 그리고 칵테일 재료로 사용되는 주정강화 와인이다. 여러 향신료나 식물이 추가되기 때문에 다른 주정강화 와인과는 다소 다른 이미지를 갖고 있다. 베르무트란 이름은 독일어로 쑥(의 한 종류)을 뜻하는 Wermut의 프랑스식 발음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스위트나 드라이로 나뉘며, 최근에는 그 외의 하위 분류도 나왔다고 한다. 오늘날 대부분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베르무트라고 하면 생소하시겠지만 베르무트를 사용한 칵테일은 매우 유명하다. 바로 마티니와 맨하탄이다. 베르무트는 요리에서도 의외로 활용된다.



프랑스의 베르무트, 노일리 프랏.
개인적으로 마티니에 넣었을 때 가장 놀랍게 맛있었던 베르무트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주정강화 와인이 있지만 워낙에 생소하고 국내에서 구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생략하겠다.




🍸 4. 마치며...

주정강화 와인은 발효주인 와인에 증류주인 브랜디가 섞여서 도수가 높아진 종류의 와인을 말한다. 그 과정에서 단맛, 혹은 그 외의 특유의 풍미가 생겨나며,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굉장히 대중적으로 된 주종이다. 대표적으로 포트(port)와 셰리(sherry)가 있다.

한국의 과하주(過夏酒) 역시 주정강화 와인이라 할 수 있으며, 전통주 업계에서는 유럽에서 떠오르게 된 16세기보다 1세기 전의 기록이 있는 걸로 홍보를 열심히 하는 중이다.

개인적으로 이탈리아의 강화 와인인 마르살라(Marsala)를 찾아서 열심히 돌아다닌 기억이 있다. 이탈리아 요리에서 마르살라 와인을 폭넓게 활용하는 편이며, 양식이 널리 퍼진 일본에서는 꽤 구하기 쉬운 와인인 것 같다. 필자도 요리를 할 때 쓰고 싶어서 열심히 찾았는데 드라이 마르살라는 구하지 못했다(눈물). 나중에 일본에 가면 사 와야 겠다.

필자는 와인과 주정강화 와인이 다른 종류의 주종이라고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서로 추구하는 맛의 종착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요리할 때도 레시피에 주정강화 와인이 있는데 구하기 어렵다고 일반 와인을 넣으면 완전히 다른 맛이 난다.

주정강화 와인은 일반적으로 개봉 후 한 달 안에는 다 마실 것을 추천하며, 개봉 전 상온, 개봉 후 냉장 보관을 권한다. 어떤 사람은 몇 개월 보관도 가능하다고 하며, 필자도 요리용은 몇 개월 이상 보관하면서 쓴다. 단지 쓰기 전에 살짝 맛은 보는 게 좋다.


About_Sool| 2022-09-21 00:00:00 | [Commen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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