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곡은 언젠가 번역해 보려고 생각 중이었는데, '애니송' 카테고리가 생긴 김에 첫 곡으로 올려봅니다.
테일즈 오브 데스티니(PS1)의 주제곡이자 DEEN의 명곡이었던 '꿈인 것처럼(夢であるように, 1997)'입니다.
오래 전에 테일즈 얘기를 할 때 언급했습니다만, 이 노래는 90년대의 한국 게이머들과 오덕들의 심금을 울리고서 그 이후 현재까지도 계속 회자되는 곡입니다.
과거에 테일즈는 TV 애니메이션을 능가하는 수려한 애니메이션이 삽입된 걸로도 유명한 게임이었는데, 오프닝 영상의 박력이 정말 소년의 마음을 울리는 멋짐을 뿜어냈고, 노래도 너무 잘 어울렸던 곡이죠. 정말 당시에 오프닝을 보고 보고 또 봤던 기억이 납니다. 게임을 한 사람보다 오프닝만 본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어요.
90년대의 10대에게 가장 뇌리에 새겨진 곡 중 하나일 것이고, 테일즈 오브 데스티니라는 게임을 한국에 알린 곡이었을 겁니다.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지금도 다들 이 노래를 부릅니다. 심지어 게임/애니에 큰 관심이 없던 애들조차 말이죠.
잠시 일본어 번역 얘기를 하면요.
과거에 이 곡은 '꿈 속에 있는 것처럼(夢であるように)'이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사실 저건 잘 한 번역은 아닙니다.
아마 '꿈 속에 있는 것처럼'이란 번역은 '夢(꿈)で(~안에서)ある(있다)ように(~처럼)'이라는 식으로 해석을 했던 오역이었을 겁니다. 실제로는 ~である 자체가 하나의 구문으로, ~だ(~이다)의 뜻을 갖고 있죠. 애초에 ある 단독으론 사람에게 안 쓰고요.
(예) 会社である = 会社だ(회사이다)
(예) 会社であります = 会社です(회사입니다)
그래서 '夢である'는 '夢だ(꿈이다)'라는 뜻이 되고요. '夢であるように'는 '꿈인 것처럼/꿈처럼'으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유사한 표현으로 '夢のように'가 있겠죠.
(예) そうであるように 그런 것처럼
(예) 夢であるように 꿈인 것처럼(꿈이다 + ~처럼)
그리고 ~ように는 '~하기를/~하도록'이란 뜻으로도 쓰입니다. 이 노래 가사에서도 '夢であるように'는 '꿈인 것처럼'이란 뜻과, '꿈이기를'이란 뜻 모두로 쓰입니다.
앞으로 이 카테고리에 곡을 올릴 때 '어떤 순서로 곡을 번역해야겠다' 같은 건 웬만하면 생각을 안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와서는 손이 오그라드는 가사의 유치함에 대해서도 웬만하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추억의 기록이니까요. (이 곡이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夢であるように
유메데 아루 요오니
꿈인 것처럼
작곡 : DEEN
작사 : 이케모리 슈이치(池森秀一)
편곡 : 이케다 다이스케(池田大介)
노래 : DEEN
答えが見つからないもどかしさで
코타에가 미츠카라나이 모도카시사데
해답이 보이지 않는 초조함 때문에
いつからか 空回りしていた
이츠카라카 카라마와리 시테이타
언제부턴가 헛돌고 있었어
違う誰かの所に行く君を
치가우 다레카노 토코로니 유쿠 키미오
다른 누군가가 있는 곳으로 가는 너를
責められるはずもない
세메라레루 하즈모 나이
비난할 수 있을 리가 없어
なんとなく気づいていた 君の迷い
나은토나쿠 키즈이테 이타 키미노 마요이
어딘지 모르게 알고 있었던 너의 망설임
제목이 너무 거창해 보이긴 합니다만. '추억의 애니송'을 본격적으로 번역하기 전에, 당시에 샀던 SM CD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 하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나름 추억이라서요.
요즘 10대에게는 생소하겠지만, 제가 어렸을 때는 일본 문화의 수입 자체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해외 여행이 법적으로 허가 된 게 90년대 초라고 생각하면 이상하진 않죠.
일본 대중 문화 개방이 1998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어, 2002년 2월에는 당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플레이스테이션2의 정식 한국 발매가 이루어졌고, 일본 게임 정식 수입과 한글화가 이루어졌죠.
음반 시장은 조금 더 늦었는데,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2004년 즈음 해서 전면 개방이 됐다는 것 같습니다. 당시 코엑스몰의 에반 레코드에 일본 음반들이 전시되어 있던 걸 보고서 감개무량했던 기억이 납니다.
(재미있는 건 그 이전 시대에도 몇몇 유명한 게임들... 그러니까 파판이나 파랜드 시리즈 등등은 정식 출시가 되었었는데 어떤 방식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건지 좀 궁금하긴 하네요.)
아무튼. 그 이전의 90년대까지의 일본 음악의 황금기에, 제 또래의 많은 아이들은 동네 게임샵에서 대만을 통해서 들어온 해적판 복사 음악 CD를 구입했습니다. 그런 해적판 CD를 제작하던 대표적인 대만 회사가 SM RECORDS라는 곳이었죠. SM CD라고 불렀었던 기억이 나요.
시대를 풍미한 대만의 일본 음악 해적판 전문 회사(?)
근데 이름만 봐도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데 왜 하필 빨간색을 찍었지;;
오해를 풀기 위해(?) CD 전체의 사진을...
올리면서 보니까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하트♥가...!
음. 평범한 해적판 음악 CD입니다.(...)
아무리 90년대라지만 해적판 복사 CD를 만드는 회사가 버젓이 존재했다는 게 참 신비롭습니다. 지금 와서 찾아 보면 대만/중국 위키피디아에도 SM RECORDS의 정보는 올라와 있지 않더군요. 대만의 흑역사 뭐 그런 거려나요. 일본과 대만은 상당히 친한 두 국가인데 신기합니다.
여하간에 당시의 학생들은 SM CD의 덕분에 일본 음악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 범위는 매우 넓어서... 위에서 보여드린 J-POP 가수(위는 아무로 나미에)부터...
당연히 애니메이션도 있고
게임 OST에
성우의 싱글 CD 모음집까지...
정말 음악 CD로 나온 건 자기들이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서라도 만들어냈던 것 같습니다.
참고로 바로 위에 있는 하야시바라 메구미(林原めぐみ) 싱글 콜렉션의 경우, 욱성(旭聲)이란 회사명을 달고 있었는데, 저게 해적판 복사 CD 회사인지, 아니면 정식 음반 회사의 것을 다시 다른 복사 회사가 복사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 당시는 혼돈의 카오스 상태였어서...
추억의 ZARD도 욱성(旭聲) CD군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SM CD조차도 대만 걸 다시 한국에서 복사를 해서 찍어내진 않았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당시에 그래서 'SM 정품'이라는 웃기는 말도 있었던 것 같고요. 아마도요.
저런 와중에 정말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한 줄기 빛과도 같은 CD가 있었는데, '애니송 모음집'입니다. 실제로 당시에 이런 게 일본에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검색이 안 되는 걸로 봐선 없었을 것 같긴 합니다만.
1996년 애니송 모음집.
아마 제가 처음으로 샀던 애니송 모음 CD였을 겁니다.
오랜만에 보니 추억 탓에 눈물이 핑 도네요;_;
좋을 때였다... 취미 생활하기 좋은 세상은 아니었지만...
그때 사서 모았던 애니송 콜렉션 CD만 이만큼이었습니다. 96년부터 2000년까지.
하... 추억이... 방울 방울...;_;
앞으로 이 '추억의 애니송' 카테고리에 올라갈 많은 노래들은, 저 당시 저것들로 들은 노래들입니다. 어떤 애니메이션은 봤고, 어떤 건 이름만 들은 채로 보지 못한 것도 있었고요. 어떤 건 애니로는 못 봤지만 만화책을 구해서 보기도 했죠.
저 때는 아직 인터넷 보급이 제대로 안 되어 있어서 어떤 루트로든 애니메이션을 보기 쉽지 않았습니다. 복사 비디오를 사서 보는 게 제일 흔한 루트였으니까요. 그나마 몇 년 지나서는 부모님 눈치 보면서 모뎀으로 받기도 했었는데 쩝.
대만제 CD를 사다 보니까 일본어를 잘 모르던 시절에는 일본에서 이런 이상한 한자어를 쓰나 고민했던 적도 있습니다. 위의 사진 중 싱글 콜렉션을 단곡전집(單曲全集)이라고 적은 거라거나... 오프닝곡을 편두곡(篇頭曲)이었나로 쓰고, 엔딩곡을 편미곡(篇尾曲)이라고 썼었죠. ^^;
전에 2021년부터 '밀린 CD'를 사서 모으기 시작했다는 건 바로 저런 것들을 일본의 정발 CD로 교체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대략적으론 끝났지만 아직 다 끝나진 않았죠. 수백 장은 산 것 같은데 말이죠. 지금에라도 구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번에 일본에서 CD들을 구입하면서 알게 된 건데, 예상은 했습니다만 SM CD의 음질은 원본과 다른 것도 많더군요. 열화되어 있어요. 아마 (자기들 PC에서) 용량을 줄이기 위해서 손실 음원으로 바꿨다거나, 아니면 중간에 낀 복사 업자들 중 누군가가 열화를 시켰거나 뭐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좀 다른 얘긴데, 한국에 정식 발매된 애니메이션 OST 중 간혹 일본판 동일 OST와 음질이 다른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냥 맘 편하게 일본 걸 사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아무튼 그냥 한번... SM 복사 CD에 대한 추억 얘기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그 시간은 참 빠르네요. 카페 활동하고, 정모도 나가고, Winamp 방송하면서 MSN으로 놀고 그러던 그 때가 생생합니다.
작년 하반기에 '쿠보양은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아'가 완결되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이 많았다 보니 이제야 봤네요.
이 만화는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체질'을 갖고서 살아가던 남고생 시라이시와, 그런 시라이시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동급생 쿠보의 청춘 학창 시절 드라마입니다.
이런 종류의 만화가 참 좋아하는 설정입니다만, 남자 주인공 시라이시는 선천적으로 타인의 눈에 띄지 못하는 특이함을 가진 캐릭터입니다. 바로 옆에 있어도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하고, 심지어 교실에 멀쩡히 앉아 있어도 교사가 발견을 못해서 출석 체크에 어려움을 겪는 초능력자(...)죠.
그리고 그런 남주를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여자 주인공 쿠보는 이런 신기한 현상이 재밌어서 시라이시에게 관심을 갖고 접근합니다.
처음 1권을 보면 '남주를 갖고 노는 일진 여주' 같은 이미지로 착각을 유도하다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반전을 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2권부터는 (아마도 원래 하고 싶었던) '예쁘고 착한 여자애가 존재감 없는 남자애에게 호감을 갖고서 접근한다'라는 구도로 금방 바뀝니다.
결국 완결이 날 때까지 이 컨셉을 거의 벗어나지 않고요. 대략 '남주가 존재감이 없음 → 여주가 남주를 찾아냄 → 여주가 남주를 놀림 → 하지만 돌아서서는 여주도 혼자 얼굴을 붉힘'이란 패턴을 이어갑니다.
작품 감상의 포인트는 '쿠보가 예쁘고 귀엽다'입니다.
제가 10대일 때 남성향 만화의 히로인은 너무 수동적이고 장식품 같은 존재라서 잘못되었다는 식의 말이 퍼졌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로선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런데 순정 만화와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야기하는 건데, 오랫동안 작품을 읽다 보니 결국 여성향 로맨스도 똑같더군요. 1차원적인 로맨스 소설에선 여주에게 그저 헌신적일 뿐이고 자신의 인생이란 없는 것 같은 비인간적인 남주인공들을 굉장히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건 꽤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결국, 자기만 좋아하는 이상적인 사람이 헌신적으로 다가와주길 원한달까요? 성별과 상관없이 기본적으로는 똑같은 존재를 바란다는 거죠.
물론 이런 식의 지나치게 단순하고 본능적인 판타지보다는, 좋은 이야기에는 각자의 인생을 잘 사는 살아있는 캐릭터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심한 정도는 아니지만, 아쉽게도 '쿠보양은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아' 역시 이런 종류의 이야기입니다.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는 외롭고 평범한 주인공에게, 계속해서 꾸준한 관심을 갖고서 다가와 주는 귀엽고 순진한 공주님의 이야기이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두 사람만의 구도가 주변의 친구들을 포함하게 확장되고, 개인사와 과거 이야기가 나오고, 남주와 여주의 성장 이야기를 다루고 싶어했지만, 제 생각엔 그리 잘 표현되지 못했고요.
초보 작가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현상 중 하나가, 처음에 어떤 컨셉이 재밌을 것 같아서 이야기를 시작한 다음에, 결국 그 컨셉 이상의 깊이를 더하진 못하는 건데요.
이 만화도 그런 느낌입니다. 결국은 작품의 시작부터 갖고 있던 컨셉 이상의 무언가를 끌어내진 못했어요. 다행히 질질 끌거나 재미가 없어지진 않고, 적절한 시점에서 깔끔하게 이야기가 끝납니다.
결론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쭉 볼 수 있는 남성향 청춘 학원물입니다. 귀여운 쿠보와 평범한 남주의 (10대 남자 입장에서의) 이상적인 알콩달콩 학창 생활이죠.
앞에서도 한 얘기지만 이런 종류의 남성/여성향 작품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결국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다가와 주길 원하는 건 남자나 여자나 참 똑같구나 싶습니다. 단지 그걸 얼마나 생동감 있게 표현할지, 아니면 평면적인 판타지로만 그려낼지가 작품의 깊이를 결정하는 거죠.
비평조로 얘기를 했는데요. 나름 TV 애니메이션화도 되고 블루레이와 DVD로도 발매된 성공작입니다. 저도 완결까지 재밌게 봤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지불한다는 게 작품의 가치를 인정했다는 거잖아요.
작가분인 유키모리 네네씨는 이게 두 번째 작품이자 첫 성공작인 것 같은데, 공개되진 않았지만 필명이나 개인 행적에서 볼 때 여성 작가분인 듯 합니다. 귀여운 그림과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란 점이 좋았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재미있었습니다. 작가분이 다음에는 더 좋은 작품으로 돌아오시기를 기대해 봅니다.
제목 : 쿠보양은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아 / 久保さんは僕を許さない
권수 : 전 12권
기간 : 2021.07. ~ 2023.09. / 2019.10.24~2023.03.02.
작가 : 유키모리 네네 / 雪森寧々
출판 : 대원씨아이 / 集英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