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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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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 술 이야기 20 ▶ 과하주 : 여름을 보내는 술
 

🍸 1. 과하주란 무엇일까?

근대화 이전의 조선 시대까지는 냉장고가 없었다. 빙고(氷庫)가 있다고 해도 대부분 국가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보통 사람의 삶과는 멀었다고 할 수 있다.

냉장고가 없으면 음식은 쉽게 상한다. 하물며 여름은 말할 것도 없다. 술도 예외가 아니라서, 20도 아래의 발효주는 탁주든 약주든 가리지 않고 모두 상한다. 이건 서양의 술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과거 시대를 보면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식재료를 말려서 보존하고 소금에 절이는 기술들이 그래서 탄생하지 않았나.


과하주(過夏酒)는 여름(夏)을 지나가는(過) 술(酒)이란 뜻이다. 즉 여름을 날 수 있는 상하지 않는 술을 말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과하주는 낮은 도수(20도 미만)의 발효주인 약주에, 높은 도수의 증류주인 소주를 섞은 술이다. 술은 알코올 도수가 약 20도 초반이 넘어가면 꽤 괜찮은 보존력을 갖게 된다. 과하주는 도수가 높아짐으로 인해 보존력이 생길 뿐 아니라, 특유의 풍미를 갖게 된다.

과하주는 17세기 초에 조선에 등장했다고 말해진다. 과거에는 소주가 사치품이었던 만큼, 과하주 역시도 부자가 아니면 구경하지 못했을 것이다.




🍸 2. 발효를 멈춤으로써 생겨나는 특유의 풍미

낮은 도수의 발효주 - 약주 -에 소주를 섞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발효가 중단된다.

원래 발효주는 근대적 공법으로 효모를 제거하거나 살균 작업을 하지 않는 한 그 안에서 계속 발효가 일어난다. 발효란 당이 알코올로 바뀌는 과정이다. 이 말은, 발효가 진행될수록 단맛은 점점 줄어들고 알코올의 맛은 점점 강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과하주는 기본적으로 완성된 약주에 소주를 붓는 것이 아니라, 발효 중인 약주에 소주를 붓는다. 그러면 소주가 추가되어 도수가 높아지면서 안에 있는 효모와 세균들도 죽거나 활동을 정지한다. 이 말은 소주를 부운 시점 이후로는 당이 분해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잔여 효소로 인해서 전분의 당화는 여전히 일어난다. 그래서 과하주는 달다. 아주 달달하다. 또한 도수가 높아지기 때문에 담을 수 있는 향미 역시 풍부해진다.




🍸 3. 술아 : 현재 마셔볼 수 있는 과하주

조선 시대의 모든 술이 그렇듯이 우리는 그때 술이 어떤 모습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중간에 명맥이 한 번 끊겼기 때문이다. 단지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복원이 되는 중이고, 과하주 역시도 제품화된 상품이 존재한다. (광고 아닙니다)

술아원에서 만드는 '술아'가 현재 유일하게 시판되고 있는 과하주인 걸로 알고 있다. 알코올 도수는 20도. 필자가 2015년 즈음에 참 좋아했던 술이고, 지금은 아시다시피 마시지 못하는 상태라서 그때 그대로의 맛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미지 출처 : 술아원(https://soolawon.co.kr/main/index)

옛 경험에선 꽃이 안 들어간 일반 과하주가 가장 매력적이었다.
시간이 오래 지났기 때문에 지금도 같을지는 모르겠다.


술아는 특유의 달달함과 곡향과 견과류를 연상시키는 묘한 향이 있었는데, 이게 과하주 말고 다른 술에선 느끼지 못하는 종류의 향이라 정말 매력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자니 한 입만 머금고 나머질 버리더라도 다시 한 번 마셔 보고 싶단 생각이 들긴 한다... 아직도 그때의 감동을 느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예전에 참 좋아했던 술이다.

참고로 김천 과하주라는 이름을 가진 전통주가 있는데, 이건 과하천(過夏泉)의 물로 만들어서 과하주란 이름이 붙은 술이다. 오늘 이야기한 소주와 약주를 섞은 과하주와는 전혀 다른 술이다.




🍸4. 마치며...

오랜만에 정말 짧은 연재가 된 것 같다! 과하주는 꽤 매력적인 술이니 한 번 쯤 마셔보시는 걸 추천드린다. 술아를 마지막으로 마신지 벌써 6년인가 7년이 지났다. 여름이 될 때마다 종종 떠오르는 술이다.

참고로 과하주는 도수가 20도 정도 되지만, 증류주의 보존력과는 비교하기 어렵다. 일단 따고서 다 못 마시면 냉장고에 넣고 1~3주 정도 안에는 다 마셔야 한다고 보시는 게 맞을 것 같다. 필자가 과하주를 이렇게 보관해 본 적은 없는데, 포트 와인과 비슷할 거라 생각된다.

아! 그리고 기억에 과하주는 증류주와 달리 차갑게 마셨던 것 같다.


2022-08-03 00:00:00 | [Comment(0)]




한국에 정식발매되었으면 좋겠는 만화들 - 22년 7월
 

오늘 뭘 쓸지 월요일부터 고민했습니다만, 이상하게 참 쓰고 싶은 글이 없어서 아무 글도 쓰지 않은 상태였죠. 억지로 올리려면야 기존에 쓰던 글 완성해서 올려도 되긴 하겠습니다만...


그러다가 작년에 이야기했던 쿠프룸의 신부가 정식 발매되었습니다. 예스24에서 오랜만에 검색해 봤더니 불과 일주일쯤 전에 나왔더군요. 그래서 재빨리 주문하고서 쿠프룸의 신부 발매 기념(?)으로 쓰는 글입니다.


이미지 출처 : 예스24(yes24.com)



그 외에 예전에 봤거나 혹은 일본판으로 봤거나 혹은 일본판으로 산 만화책인데 정식발매되었으면 좋겠는 게 아래의 것들입니다.


1. Vivy -Fluorite Eye's Song-


이미지 출처 : amazon.co.jp


만화책으로는 의외로 드문 정통 SF 장르입니다. 소개하는 셋 중 가장 재미있게 보고 있는 만화입니다.

미래에 인류가 인공지능에게 멸망당하는데, 마지막 순간 과거를 바꾸기 위해 100년 전으로 보내진 인공지능은, 과거의 아직 발전하지 못했던 초기형 인공지능 로봇 비비를 개조해서 미래를 바꾸고자 한다는 내용.

저도 지금 글 쓰면서 안 건데, 애니메이션도 있는 것 같군요. 소설이 있는 건 알았습니다만... 둘 다 잘 모르겠고 개인적으론 만화책이 한국에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림도 아주 좋고 연출도 좋고 이야기도 좋습니다.




2. 산마루 귀신(峠鬼)


이미지 출처 : amazon.co.jp


아주 예전에 귀신동자 젠키 얘기를 하면서 꺼냈던, 일본 슈겐도의 창시자 엔노 오즈누를 소재로 한 신과 인간과 귀신의 이야기입니다. 예, 아베노 세이메이 다음으로 유명한 그 분이죠.

소녀 미요는 마을의 풍습의 희생양이 될 운명에서 오즈누에게 구원을 받고 신들을 만나러 다니는 여행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미래와 현재가 엉켜진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알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과거의 일본을 잘 표현하는 특유의 그림과 함께, 일본적인 신(神)에 대해서 이 정도로 잘 묘사한 만화도 정말 드물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민속신들과 과거와 유명한 전설과 특유의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 수작입니다. 요즘 이런 만화도 정말 드물죠.




3. 우주검열관(宇宙検閲官)


이미지 출처 : amazon.co.jp


꽤 오래 전에 극초반만 보고서 정발이 안 되나 기대하고 있는 작품이라 잘 기억은 안납니다만. 미래의 지구에서 종말이 다가온 느낌으로 정체불명의 적들과 싸우는 만화였나 싶었습니다. 기본적으로 SF 메카물이었는데, 우주검열관이란 제목처럼 비밀에 싸인 강력한 주인공이 이 전쟁에 개입하는 종류의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왠지 이거 안 나올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일본판을 사서 보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쩝.



예전엔 정식발매가 되든 말든 아무거나 사서 봐도 되니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면 일본판 만화책은 다른 사람이 읽어 볼 수도 없고 빌려줄 수도 없고... 특히 한국에 소개가 안 된 만화는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참 외로운 상황(?)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가능하면 정식발매가 되는 게 좋다는 게 요즘 생각입니다.

아무튼 쿠프룸의 신부가 발매되어서 정말 기쁘네요! 다른 것도 한 1년쯤 더 기다려보다가 안 나오면 그냥 일본판으로 사야겠습니다. 그러고보니 요즘 사이보그 009를 소장하고 싶었는데 참 구하기가 애매하네요. 이건 재판 안 해주려나-_-;;


2022-07-30 01:38:36 | [Comment(0)]




암흑시대 : 중세 유럽을 바라보는 자세에 대하여
 

오늘은 연재를 더 진행하기 전에, 중세라는 시대를 접할 때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사실 세상의 모든 지식에 해당하는 이야기이긴 한데요. 그 중에서도 '중세 유럽'을 바라볼 때 흔히 어떤 유형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는지 얘기해 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이야기가 중세를 비판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중세를 변호하기 위한 것인가를 판단하면서 봐야 합니다. 감히 말하건대, 그것이 '전문가'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도요.



1. 악명 높은 암흑시대

아마 유럽의 중세 시대를 '암흑시대(Dark Ages)'라고 부르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 보셨을 것 같다. 중세를 어두운 시기였다고 말하는 건 일견 그럴 듯해 보인다. 찬란했던 로마 문명이 무너졌고 '중국처럼' 단계적으로 발전하던 통치 시스템이 무너졌다. 그 자리를 게르만 족이라는 이민족이 채우고서 거대 제국에서 '퇴보했다'고도 말할 수 있는 봉건제 국가로 전락했다.

관료제와 상비군 시스템이 사라졌고, 수많은 지식이 유실됐다 말한다. 정략 결혼의 부작용으로 외도를 당연시했고, 성직자들은 부패해서 면죄부를 팔아먹고 불쌍한 여자들을 마녀라고 몰아서 불태웠다고 말한다. 의학은 미개해서 피를 뽑으면 병이 낫는다는 사혈을 일삼았고, 위생 수준은 끔찍해서 평생 거의 목욕을 안 하고 향수를 뿌려대고 거리는 똥밭이었다고 말한다.

그 와중에 안으로는 왕과 귀족이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고, 밖으로는 바이킹을 포함한 이민족이 끊임없이 유럽을 괴롭혔다. 농노들은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자유를 박탈당하고서 거지꼴을 하고서 착취당했다. 통치자는 끔찍할 정도로 높은 세금을 걷은 탓에 농민들은 언제나 굶어 죽기 직전이었는데, 그 악명 높은 인두세는 반란을 일으킬 정도였으며, 그 외에도 창문세, 난로세, 화덕세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세금을 착취했다. 그 외에도 십자군, 흑사병, 초야권 등등... 그야말로 안 좋은 것 투성이의 암흑시대였다.

인류는 이 끔찍한 1000년의 암흑기를 넘어서 빛나는 르네상스와 근세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The_Triumph_of_Death

흑사병의 참상을 그린 '죽음의 승리(The Triumph of Death)', 피터르 브뤼헐, 1562


이상의 이야기는 흔히 말해지는 중세에 대한 풍문의 일부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 말한 이야기의 절반 좀 넘게는 틀렸고, 남은 부분은 맞지만, 그 맞는 부분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암흑'의 여부가 달라진다. 저 시대의 세계 문명의 평균에서 볼 때 '암흑'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혹은 나쁜 면만을 뽑아서 부각시키고 과장시켰을 수도 있다.

이 주제에 대해 현대 학자들 사이에서는 결론이 나 있다. 중세 유럽은 암흑시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 번 퍼진 소문은 잡기 힘든 법. 특히 나쁘고 자극적인 이야기, 심지어 그게 나랑 상관없는 얘기면 뒷담화를 하기 참 좋지 않은가.

그럼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보자. 왜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부르기 시작했을까? 그것도 전세계적인 규모로 말이다.




2. 암흑시대라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

(2-1) '암흑시대'의 기원

암흑시대(Dark Ages)라는 용어는 대체 언제 어디서 튀어나왔을까? 의외로 이 말은 '중세 시대(476-1453)'에 등장했다. 여기서 잠시 배경 지식을 확인해 보자.

중세는 기독교의 시대였다. 신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모든 것은 신의 계획에 포함된 현상이자 결과였다. 그런데 우리가 얼핏이라도 들어봤던 고대의 고전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이성'을 중시했던 철학들은 신의 창조나 기적을 의심하고 연구해 보게 하는 식의 논리를 담고 있었다. 그래서 중세 시대의 기독교는 고대 인문학을 금지된 지식으로 분류했다.

여기서 14세기 이탈리아의 시인이었던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1304-1374)가 등장한다. 그는 1333년 여행 중에 고대 로마의 학자 키케로의 글을 우연히 접했다. 그는 감명을 받고서 유럽을 돌아다니며 잊혀진 고대 서적을 찾아 헤매고 고대 인문학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남아 있는 책을 찾기란 매우 힘들었다.

그러고서 페트라르카가 당시를 묘사했으니, 바로 '암흑시대'였다. 고대 로마까지의 문화와 지식은 찬란하게 빛났는데, 로마가 망한 이후로는 그 빛을 잃어버렸단 의미였다. 아마 고대 인문학이 너무 좋았는데 그걸 탄압하는 교회와 그 시대가 짜증났던 것 같다. 현대의 속된 말로 하면 '책 한 권 찾아 읽기도 힘든 이 더러운 세상'이란 식으로 말이다.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Petrarch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1374)


이 용어를 15세기의 인문주의자였던 레오나르도 브루니(Leonardo Bruni)가 계승했다. 그 역시 키케로에 빠졌던 공화주의자였으며, 피렌체 공화정이 자유와 평등을 구가하고 있다고 찬미해 마지않는 피렌체의 시민이었다. 최초의 근대 역사서라고 불린 『피렌체 사람들의 역사』 열두 권을 저술했는데, 여기서 페트라르카의 '빛의 시대(로마)'와 '암흑의 시대(그 이후 중세)'에 이어서 '더 나아진 시대(현재 피렌체)'라는 3단계 시대 구분을 적용했다.

여기까지 보시면 아시겠지만 원래 '암흑시대'라는 말은 중세 말에 등장했는데,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뜻과는 꽤 다른 뉘앙스로 쓰였다. 심지어 페트라르카와 브루니가 같은 뜻으로 사용한 것도 아니다.

다른 관점으로는 '르네상스(Renaissance)'는 14세기 중세 말에 이미 시작되었고, 이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인물로서 그 이전 시대를 비판하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빛→암흑→더 나아진 지금]이란 이 구분법이 이후 중세가 뒤집어 쓰게 된 오명의 프레임이 된 것이다.



(2-2) 근대까지 이어지는 중세 폄하

이후 르네상스의 이탈리아 인문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암흑시대라는 말이 퍼졌다. 이 말은 르네상스 시대를 사는 자신들이 그 이전까지의 빛을 잃어버린 시대보다 낫다는 의미로 쓰였다. 과거를 폄하해서 현재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16세기 이탈리아의 건축가 조르조 바사리는 이런 중세 폄하에 편승해서, 중세 교회에 널리 애용된 건축 양식을 '고딕(Gothic) 양식'이라고 부르며 비하했다. 중세의 건축 양식은 고트족(Goths) 같은 야만인들의 건축 스타일이란 의미였다(실제론 고트족과 무관하다). 이런 것을 보면 이미 '인문학에 대한 교회의 탄압'에서 시작했던 '암흑시대'가 아무 근거 없는 혐오 수준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Chartres_Cathedral

대표적 고딕 양식의 샤르트르 대성당(Chartres Cathedral)


그 후 16~17세기 종교개혁 때 개신교에서는 '암흑시대'에 반가톨릭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개신교 입장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는 부패의 온상이었고 모든 걸 비난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 제국이 망한 후 구(舊) 교회가 지배했던 중세 시대는 그야말로 '암흑시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의미가 입혀졌다.

이 개념을 다시 18세기의 계몽주의자들이 이어받고서 유럽 전체로 널리 퍼트렸다. 계몽주의(Enlightenment)는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믿고서 계몽하여, 기존 사회의 결함을 바로잡고 옛 습관과 사상, 제도 등을 타파하자는 것이다. 그들에게 중세는 혐오의 대상이었다. 중세 시대는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종교'의 비중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계몽주의자인 볼테르(1694-1778)는 『각 국가의 풍습과 정신에 대한 에세이(Essai sur les mœurs et l'esprit des nations)』에서 중세를 "이성으로 타파해야 할 무지, 야만, 몽매, 폭력의 시대"라고 해석했다. 참고로 이 사람이 신성로마제국을 두고 한 말 중엔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며, 제국도 아니다"라는 말도 있다. 인터넷에서 이 말을 아무 때나 인용하는 분들이 꽤 많은데, 볼테르 자체가 중세를 혐오하는 계몽주의자였단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암흑시대란 용어와 중세 혐오는 이렇게 길고 깊은 역사가 있다. 14세기에 시작해서 거의 600년 넘게 지식인과 종교인, 대학 등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중세를 폄하하고 왜곡했으니 얼마나 뿌리 깊을까. 이 때문에 좀 오래된 책이나 논문은 당시의 암흑시대 개념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 많다. 역사학계에선 이런 관점이 현대(거의 21세기)에 와서는 뒤집혔다고 하지만,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상식처럼 널리 퍼져 있으며, 간혹 전공자들 중에서도 이런 관점을 여전히 가진 분들도 여전히 남아 있다.




3. 중세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들

이런 부작용은 지금도 남아 있다. 아무 말이 난무하는 인터넷에선 중세가 암흑시대인 게 정설이고, 오래된 (정식 출판된) 역사서에도 암흑시대라는 용어가 쓰인 것을 찾아서 읽어볼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오늘날 사람들이 암흑시대란 용어를 쓰는 이유는 '중세 유럽'을 21세기 현대인의 눈으로 봤을 때 야만적이고 미개하다는 이유가 대부분이다. 사실 그건 당연한 건데 말이다(혹시 19세기 조선 한양의 모습을 찾아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럼 중세가 정말 미개했을까? 미개하긴 했다. 21세기에 비해 그 시대만큼만. 다시 말해 미개하지 않았다. 23세기 지구인이 21세기 지구인을 보면 스스로 찬양하는 민주주의조차 제대로 구현하지도 못한 미개인들이라고 손가락질할 것 같은데... 거의 1500년 전부터 500년 전까지의 시대를 21세기 문명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게 공정한 것일까? 21세기야 말로 병에 걸렸다고 배를 갈라서 장기를 잘라내고 있으니 이 무슨 미개한 시대란 말인가(맥코이 박사님 사랑합니다).

아무튼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부르는 것들 중 아예 잘못된 오해들을 몇 가지 살펴보자.


(3-1) 마녀사냥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마녀사냥은 중세 시대에는 거의 없었다. 대략 14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중반에 걸쳐서 진행되었는데, 가장 혹독했던 시기는 16~17세기 근세였다. 악명 높은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MALLEUS MALEFICARUM)』는 중세가 끝난 1486년에 등장했다. 또한 의외로 아메리카 대륙 같은 신세계에서도 굉장히 활발하게 진행됐다. 로마 가톨릭만이 아니라 개신교 역시 마녀사냥을 했다. 기록 상 마지막 마녀 재판이 열린 곳은 1878년 미국이었다.

다시 말해서 마녀사냥을 '중세 암흑시대'의 악행이라 말하는 건 누명이다.

참고로 마녀 관련 글을 다시 쓸지 몰라서 얘기하는데, 마녀를 모두 화형에 처했다는 것 역시 오해이다. 거의 대부분은 교수형 등 다른 방법으로 처형했다고 한다. 단, 시체는 반드시 태웠다. 이유는 악마와 계약한 마녀가 죽은 후에 되살아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모든 마녀의 시체를 불태웠다는 것이, 모든 마녀를 화형시켰다는 것으로 잘못 전해진 것이다.



(3-2) 중세 사람은 목욕을 하지 않았다

이것도 잘못 알려진 오해이다. 시기와 지역에 따른 차이는 있겠으나, 중세에도 로마와 동방의 문화의 영향으로 목욕을 했다. 아마 자료 좀 찾아보신 분은 중세 목욕탕과 매춘 같은 종류의 글을 보셨을 것이다. 평범한 대중 목욕탕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목욕 문화는 지역과 신분에 따라서 편차가 컸다. 평생 거의 목욕을 안 하는 지역도 있었고, 목욕을 즐겨하는 지역도 있었다. 고귀한 신분이 더 목욕을 접하기 쉬운 경향이 있었지만, 지역 문화와 개인의 취향에 달려 있었던 것 같다. 예컨대 영국의 왕 존은 여행할 때 욕조를 가지고 다녔다고 전해진다.

가장 높은 사회 계급이었던 성직자들은 취향(?)이 남달랐다. 목욕에 대한 인식이 극과 극을 달렸는데, 주로 초기의 엄격한 규칙을 가진 수도원에서는 세상을 등진 증거로서 목욕을 잘 하지 않았다. 더러움을 미덕이라고 말하는 곳조차 있었다. 하지만 목욕을 자주 하는 것이 허용되는 곳들 역시 있었다.


훗날 유럽 사람들은 목욕을 거의 하지 않게 됐다. 이유가 뭘까? 유럽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몇몇 전염병 때문이다. 가장 큰 건 흑사병과 한센병(나병)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목욕탕에 가도 전염병을 흔하게 걸리지 않는 이유는, 전염병 자체가 돌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강하며 보건위생도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엔 그렇지 못했다.

중세 말이 되어 흑사병이 돌았고,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목욕탕에 다녀오면 병에 걸릴 때가 많단 걸 알게 됐다. 즉 목욕을 하면 병에 걸리고 죽는다는 믿음이 퍼졌다. 중세 이후에도 종종 흑사병이 재유행했는데, 이런 경험을 거치면서 16세기의 유럽인들은 물(목욕)이 생명을 앗아간다고 생각하게 됐다. 근세에서 근대까지는 목욕을 잘 안 한 것이 맞으며, 이 믿음은 거의 현대에 와서야 깨졌다.



(3-3) 중세 때는 세상이 편평하다고 믿었다

역시 잘못 알려진 오해이다. 이건 매우 쉽게 설명이 가능하다. 12세기 말에 만들어진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오브를 보자.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Imperial_Regalia


이 임페리얼 오브(Reichsapfel)는 황제를 상징하는 물건 중 하나이다. 둥근 모양은 지구를 뜻하며, 위의 십자가는 신이 지구를 통치함을 상징한다. 지구가 둥글다는 개념은 이미 고대 그리스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중세에 우리가 사는 땅이 아예 편평하다고 믿었다는 소문이 있는데 잘못된 것이다. 그럼 왜 이런 오해가 생겼을까? 17세기 이후의 학자들이 미개한 중세와 종교를 욕하기 위해서 과학 vs 종교의 구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겨났다는 말이 있다. 이 오해는 19세기까지 통용되다가 20세기부터 (학계에선) 바로잡혔다고 한다.


이처럼 아예 잘못된 소문들이 매우 많다. 이 자리에서 전부 얘기하진 못하지만, 앞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나씩 얘기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4. 중세를 폄하하는 사람들과 변호하는 사람들

이런 전통 때문에, 혹은 현대적인 관점에서 중세를 평가해서, 혹은 그냥 잘 몰라서, 중세를 폄하하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다. 반대로 이런 잘못된 믿음을 바로 잡고자, 혹은 중세를 좋아해서 변호하는 사람들도 많다. 재미있게도 이런 경향은 전문 서적에서도 어느 정도 나타난다.

어떤 책이 딱딱한 역사 서적이라고 해도 글에는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유명한 외국의 학자들조차도 중세 유럽을 이야기하면서 비판하고 심하면 조롱조로 말할 때도 제법 많다. 그럼 그게 거짓말이냐고 하면 아니다. 단지 안 좋은 면을 부각시키면서 비판적인 어조를 쓸 뿐이다.

반대로 변호하는 측을 보면 좋은 면만 보여주고 나쁜 면은 감추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없는 사실을 꾸며내는 것은 아니다. 안 좋았던 점도 있었고, 좋았던 점도 동시에 있었다. 비판하는 사람도 맞고 변호하는 사람도 맞다. 그럼 독자는 뭘 보고 판단해야 하는가? 스스로 무엇이 진실이었을지 추측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서 중세의 성과 도시가 매우 불결하고 더러웠다는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실제로 매우 더러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근대적 하수도와 정화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대화 이전의 모든 국가가 겪는 문제였다. 조선 역시 20세기까지 겪었다.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Agriculture_in_Scotland_in_the_Middle_Ages

중세의 거리가 더럽고 통제가 안 됐던 큰 이유 중 하나는
집과 도시 안에서도 가축을 키운 것이 크다고 말해진다.
이는 도시 형성 전부터 유지되던 전통적인 삶의 형식 때문이었다.


이걸 안 좋게 표현하는 사람들은 "중세는 미개하고 더러웠으며 사람들은 위생에 신경쓰지 않았다", "동물과 같이 살고 창문 위에서 오물을 길거리에 그냥 버렸으며, 거리에는 똥이 쌓여 있었다", "똥을 맞지 않기 위해 우산이 발명되었고, 똥을 밟지 않기 위해서 하이힐이 발명되었다" 같은 식의 말들을 한다.

반대로 변호하려는 사람들은 "중세 도시는 오물 처리에 각별히 신경 썼고 오물 처리를 전담하는 공무원을 고용해서 계속 일을 했다", "창문에서 사람들 다니는 길에 그냥 오물을 버린 게 아니라, 오물을 버리는 구역과 배수로가 따로 있었다", "동물은 개인 재산이었고 대규모 목축업이 없었기 때문에 동물을 집집마다 보유했다", "더러움에 민감해서 오물과 동물을 통제하는 법이 끝없이 만들어졌다", "우산과 하이힐은 오물과 상관없다" 같은 말을 한다.

뭐가 맞을까? '우산과 하이힐'에 대해 나쁘게 말한 것을 빼고는 어느 정도 다 맞다. 양쪽이 한 말이 다 맞다. 하수도가 없고 여러 시스템이 미흡했기 때문에 근대화된 도시에 비해서 매우 더럽고 냄새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더러움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 건 아니며, 그 당시의 수준에서 개선 의지를 갖고서 꾸준한 노력을 기울였다. 공중 변소도 있었고 관련된 직업들도 있었다. 중세에 대한 주제는 대부분 이런 비난과 변론의 두 관점이 있다.

필자는 굳이 말하면 변호하는 쪽에 가깝다. 하지만 중립적으로 쓰고자 노력한다. 관점은 글에서 드러난다. 필자가 읽었던 유명한 전문 서적들조차도 비판하는 어조를 띨 때가 많다. 비판과 변호 중 어느 쪽이 더 맞는 얘길까? 전공 학자가 아닌 한 얘기하기 어려운 이야기이며, 무엇보다도 수백 년 전에 대한 완벽한 정답은 누구도 모른다.

우리는 그 사이에서 어떤 적정 지점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그리고 계속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미래의 기준과 가치관을 가진 상태로 과거를 들여다 본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이걸 꼭 얘기해두고 싶었다.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Patten_(shoe)
https://en.wikipedia.org/wiki/High-heeled_shoe

중세 사람들이 야외활동을 위해 덧신은 나막신(patten, 좌)과 17세기 루이 14세의 하이힐(우).
좌측의 패튼은 진흙과 오물 때문만이 아니라, 얇은 가죽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신었다.
우측의 하이힐은 앞부분이 낮아서 깊은 진흙과 오물을 피하기 힘들다.



그리고 시대를 잘 봐야 한다. 중세는 천 년이다. 중세 후기만 봐도 그 안에서 교회가 약했다가 강했다가 약해지는 흥망성쇠를 겪고, 화폐 경제가 없었다가 후에는 활발히 유통되는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길다는 조선 왕조 500년의 초기 중기 말기의 모습이 완전히 다른데, 중세라는 기간 동안 넓은 유럽 전체를 하나의 통일된 경향으로 묶을 순 없는 것이다. 이걸 기억하고서 중세의 지식을 보아야 한다.

중세 이후 근세와 근대 역시 중세로 착각하는 분들도 매우 많다. 이건 두 가지 이유에서인데, 하나는 시대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고, 전통적으로 고대-중세-근대 라는 삼분법을 오래 사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통 중세를 비하할 땐 르네상스 이전까지를 암흑시대라고 말하기 때문에 근세와 구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앞서 말한 '오물' 이야기를 다시 보자. 중세 시대에는 우산이 없었다. 대신 후드 달린 망토나 기타 여러 비옷의 역할을 하는 것들이 있었다. 우산이 유럽에 재등장한 건 17세기쯤 돼서다. 심지어 도구 자체가 발명된 건 중세보다 훨씬 이전이며, 17세기의 영어 단어 우산(umbrella)의 어원은 원래 '그늘(umbra)'이란 뜻이다. 당시에 햇빛을 막기 위한 도구로 인식한 것이다.

하이힐 역시 17세기 궁정에서 부와 권위를 표현하기 위해서 남성(왕)을 중심으로 유행했다. 야외 활동을 위한 일종의 나막신인 패튼(patten) 등과 착각해선 안 된다. 앞에서 말한 마녀 사냥은 어떤가? 대부분 근세에 벌어진 참극을 '미개하고 어두웠던 중세'로 전가시켰다. 그러고서 대충 "역시 암흑시대!"하면서 즐겁게 비웃는 것이다.




5. 마치며...

유럽의 중세는 암흑시대라는 오명과 편견에 휩싸인 채로 수많은 잘못된 정보가 양산되고 퍼져 있다. 이것은 매우 오래 되고 뿌리 깊으며, 근본적으론 유럽인들 스스로 수백 년에 걸쳐서 자신들의 역사를 왜곡하고 폄하한 결과이다. 오늘날의 영화 같은 매체나 인터넷도 여기에 큰 몫을 거들고 있다.

또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정확한 정보 역시 비판하고 폄하하는 관점과 옹호하고 변호하는 관점이 뒤섞여 있다. 어떤 것엔 정답이 있지만, 어떤 것엔 정답이 없다. 중세 유럽이란 굉장히 극단적인 정보들이 뒤섞여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받아들이시면 좋겠다.

이건 필자가 연재하는 글도 마찬가지이다. 필자가 이야기하는 관점이 전부가 아니며,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당연히 서로 다른 모습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 가장 주제에 맞는 것을 가져와서 가능하면 중립적으로 써 보려고 노력할 뿐이다.


앞으로의 연재를 보시면서 이런 부분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 이곳이 아닌 다른 정보도 마찬가지이다. 언제나 정식 논문이 가장 신뢰도가 높고, 출판된 책은 비교적 높지만 논문만큼은 아니며, 인터넷의 경우 저명한 기관의 공식적인 컬럼 등이 그나마 괜찮고, 뉴스 기사는 제한적으로 약간의 신뢰도를 가진다. 그 외의 것들은 출처로서의 신뢰도는 매우 낮다.

일반 대중이 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건 역시 출판된 책이라고 생각한다. '지식'을 위해 책을 읽을 때는 저자를 꼭 보고 해당 분야의 박사 학위를 딴 전공자이자 교수임을 확인하는 게 좋다. 책을 여러 권 읽으면 비교적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통해 여러 관점을 접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인터넷의 정보를 보고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기준이 생긴다. 중세는 비전공자에겐 참 쉽지 않은 분야인 것 같다.


2022-07-27 00:00:00 | [Commen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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