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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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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서유럽의 성씨(3) : 귀족의 성씨와 드(de)와 폰(von)
 

1. 귀족의 성씨와 족보와 문장(紋章)

지난 연재에서 성씨의 기원은 본래 개인 식별에서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그렇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과거의 사례를 보면 반드시 그런 이유만으로 성씨가 기원한 것은 아니다.

11세기의 프랑스 오세르(Auxerre) 지역에 있는 세녀레(Seignelay) 가문 사람들을 보면, 성주의 가족만이 아니라 주둔하고 있는 기사들조차도 자신의 이름에 '드 세녀레(de Seignelay)'라는 호칭을 붙였다. 이런 식의 초기 호칭법은 일찍부터 귀족 성씨의 기원이 단순히 구별이나 혈통만이 아니라 소속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쓰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드 세녀레'는 이후 12세기가 되면 혈통에 한정된 호칭으로 바뀌는데, 이건 다른 요소와도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중세의 가구, 그리고 집사와 마구간지기]에서 중세의 '가족(family)'이란 개념은 주인 가족만이 아닌 가신과 하인을 모두 포함한 개념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12세기에 가서 주인 가족과 사용인, 하인들이 분리되기 시작했는데, 이런 가족 공동체의 개념의 변화를 통해 드 세녀레 가문의 케이스도 생각해 볼 만 하다.


중세 후반부가 되어 귀족들은 한 가지 흥미로운 작업을 시작했는데, 바로 족보의 작성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가장 이른 가계도(Genealogy)는 10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이다.



16세기 뷔르템베르크 공작 루드비히 3세의 가계도.


10세기 무렵부터 귀족들은 자신들의 혈통을 찾아 올라가기 시작했다. 피의 고귀함을 증명하고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였다. 기본은 부계 혈통을 찾아 올라갔지만, 만일 모계 혈통이 더 고귀할 경우 모계 혈통을 중간에 섞어서 올라갔다. 가능하면 왕족의 혈통이면 좋았고, 궁극적으로는 신의 핏줄을 이으면 더욱 좋았다.

여기서도 흥미로운 것은 게르만인들은 본래 자신들이 오딘 등 북유럽 신의 후손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시대에 와서는 아담이나 노아 등의 핏줄을 이었다는 식으로 가계도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10세기 무렵 족보를 작성한 일이나 프랑크 제국 붕괴에서 이어진 일련의 가족 구조의 변화, 시대의 혼란과 그 뒤의 부흥, 기독교식 문화의 도입과 성씨의 탄생, 이후 12세기에 퍼져 나간 가문의 문장(Coat of Arms)과 문장학(heraldry)은 모두가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중세 귀족들이 가족의 개념을 재정립하고 조상과 뿌리를 찾아 나가긴 했지만, 11세기 이후 중세 성기, 아니 그 이후의 모든 시대에서도 보통은 전통보다 실질적인 힘과 권력이 더 중요했다. 중세에 성(城, castle)을 가지고 영지를 통지한다는 것은 대단한 힘과 권위였고, 그렇기에 새로운 영지나 더 높은 지위를 얻었을 경우 귀족들은 종종 성씨(혹은 그 기원이 된 칭호)를 바꾸기도 했다.

그렇게 귀족의 성씨는 바뀌고 새로 만들어져 갔다.




2. 드(de)와 폰(von)은 미들네임이 아니다.

꽤 많은 분들이 이름과 성씨의 중간에 위치하는 '드(de)'와 '폰(von)'이란 단어를 미들네임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저 둘은 '전치사'라는 품사에 해당하는 문장 성분이지 미들네임이 아니다.

예를 들어서 '서울의 철수'라는 이름(호칭)이 있다고 해 보자. '철수'의 출신이나 소속지를 설명하는 별명이 붙은 호칭법이다. 이걸 외국어로 쓰면 아래와 같이 된다.

이름(본명)별명(지역)
영어철수오브 서울
프랑스어철수드 서울
독일어철수폰 서울

모두 '서울의 철수'라는 뜻.


드(de), 폰(von) 뿐만 아니라 두(du), 르(le), 즈(zu), 판(van), 디(di), 다(da) 같은 단어들은 모두 그 자체로 이름이 아닌 전치사(혹은 관사)이다. 대부분이 '~의(of)', '~출신의(from)', '~에(to/at)' 같은 소속과 출신을 뜻한다.

유명한 다른 예를 보자. 잔 다르크(Jeanne d'Arc)는 'Jeanne de Arc'에서 de 뒤에 모음(A)이 오기 때문에 d'A라는 형태가 된 건데, 뜻은 '아르크의 잔'이란 뜻이다. 그래서 잔 다르크를 영어로 조안 오브 아크(Joan of Arc)라고도 부른다.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에서 da는 출신지를 의미하는 전치사이다. '빈치 마을의 레오나르도'라는 뜻으로 호칭일 뿐 성씨가 아니다. 귀족의 경우도 15세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지기스문트 폰 룩셈부르크(Sigismund von Luxemburg) 같은 경우를 보면 '룩셈부르크의'라는 뜻의 '폰 룩셈부르크'는 성씨가 아니라 호칭일 뿐이다.

참고로 이런 전치사 뒤에 지명만 온 것은 아니다. 사람의 이름이 와서 그 사람의 자손이나 아들이란 뜻의 별명이 되기도 했으며, 이런 별명들이 훗날 고정된 가족 성씨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3. 폰(von)과 드(de)가 붙으면 귀족일까?

이 주제는 결국 폰(von)과 드(de) 등이 붙으면 귀족 이름이냐는 문제로 이어지는데, 이미 앞에서 봤듯이 귀족 이름이 아니어도 쓴다. 위의 잔 다르크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둘 다 귀족이 아니다.

그럼 왜 저게 귀족 성씨라는 선입견이 생겼을까? (1) 영지명, 가문의 기원이 된 지명 등을 이용한 귀족의 성씨가 초기부터 굉장히 많이 도입되었다는 이유와, (2) 독일 지역에서는 실제로 귀족만이 사용하도록 법으로 지정한 시기가 있으며, (3) 법이 없었어도 귀족의 성씨에 붙이는 문화가 널리 퍼졌었기 때문이다.

귀족의 이름에 들어가는 이런 전치사를 Nobiliary particle이라고 부르는데, 독일권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는 대부분 비귀족 신분이 쓰지 못하게 금지를 하진 않았다. 독일권조차도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 온 각 지역의 성씨를 모두 제제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1782년 귀족 증서를 받은 이후로 폰(von)이 이름에 들어갔다.
그의 아버지는 귀족이 아니기에 폰(von)이 없다.


하지만 시민 혁명 때를 보면 재미있는 움직임이 있는데, 시민 혁명 이후 프랑스의 비귀족들 사이에서는 성에 '드(de)'를 붙이는 유행이 생겼고, 반대로 원래 귀족 출신 가문들은 이름에서 de를 지워서 혁명의 바람을 피하기도 했다. 드(de)가 귀족적 요소라는 인식이 사회에 퍼져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폰(von)과 드(de) 같은 말이 귀족의 성씨의 일부였냐는 말은 맞지만, 시대와 지역에 따른 차이가 있고 비귀족들도 사용했기 때문에, 오늘날 성씨 앞에 남아 있는 드(de)와 폰(von)이 조상이 귀족이었다는 걸 조금도 증명하지 못한다. 현대 한국의 김/이/박 성씨가 조상이 양반이었단 걸 전혀 증명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성씨에 전치사를 넣는 방식은 20세기에 귀족 특권이 폐지되는 과정에서 전체적으로 사라졌다. 현대에 와선 법으로 사용을 금지했으며, 예외적으로 과거부터 '드'나 '폰'을 쓰던 성씨들에 한정해서 성씨의 일부로 인정 받았다고 한다. 과거와 달리 현대의 성씨는 법이 형태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4. 귀족 이름의 실제 예시

이론만 얘기하면 아쉬우니, 끝내기 전에 실제 귀족의 이름들을 한 번 보자.

시대이름칭호(epithet)
10세기Otto
오토
der Große
데어 그로세
오토 대제. 신성로마제국 초대 황제.
12세기Louis
루이
le Jeune
르 잔느
연소(年少, Jeune은 young이란 뜻)왕 루이.
프랑스의 왕 루이 7세(Louis VII).


중세의 이름을 보면 성씨가 없는 이름이 거의 대부분이다. 별명과 칭호를 추가로 부여해서 개인을 구분했다.

또한 '루이 7세'처럼 세례명을 돌려 쓰다 보니 조상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고 ○○세라고 부르는 문화가 점차 자리잡는데, 이런 문화는 세례명을 사용하기 이전에는 없던 것이었다.


시대이름별명(nickname)
14세기Johann
요한
von Hessen
폰 헤센
독일 헤센 지역의 방백(Landgraf) 가문 귀족.
위의 '폰 헤센'은 14세기 기준으론 성씨라기보단 지역을 설명하는 호칭이다. 요한 폰 헤센은 헤센 방백(Landgraf) 하인리히 1세의 아들이었고, 본인은 니더헤센(Niederhessen)의 방백(Landgraf)이었다.
※ 가족 세습 이름이 아닌 건 여기선 성씨(family name)라고 부르지 않겠다.


지역이나 영지, 소속 등을 말하게 되면서 전치사 뒤에 지역명을 붙이는 모습이 보인다. 간혹 귀족의 성씨가 무조건 영지의 이름을 따라 간다고 생각하는 분들을 볼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유럽의 귀족들은 작위를 여럿 가질 수 있었고 영지 역시 여럿을 가질 수 있었다. 영지와 작위에 따른 호칭은 성씨와 별개의 것이었다.

위의 '요한 폰 헤센'은 니더헤센의 백작이었지만, 그의 뿌리인 '헤센'을 기준으로 '폰 헤센'이라고 소속지가 소개된다. 하지만 성씨 개념으로 사용된 건 아니다. 그의 아버지는 헤센 방백이었으나 이름 뒤의 호칭에 반드시 폰 헤센(von Hessen)이 붙지는 않는다.


15세기의 프랑스 귀족 로베르 드 바르(Robert de Bar)를 보자. 여기서 '바르(Bar)'는 성씨로 보이는데, 그는 '콩트 드 수아송(Comte de Soissons, 수아송의 백작)'이란 백작 작위(title)와 '콩트 드 마를르(Comte de Marle, 마를르의 백작)'라는 백작 작위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전체로 부르면 '로베르 드 바르, 콩트 드 수아송, 콩트 드 마를르 '가 된다.

이름과 성씨나 호칭을 쭉 부르고, 뒤에 '작위와 영지'를 따로 붙이는 게 정식 호칭이다. '철수 드 서울, 백작 드 강남구(강남구 백작)' 이런 식으로 말이다. 줄여서 부르는 법은 지역마다 다른데 프랑스는 그냥 '로베르 드 수아송'이런 식으로 줄일 수도 있었다는 것 같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독일권에서는 진짜 역사 깊은 전통 귀족은 오히려 성씨에 폰(von)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시대이름기원/성씨지역/영지
16세기François
프랑수아
de Pérusse
드 페뤼스
des Cars
데 카르
프랑스의 카르 영지(les Cars)를 통치하던 de Pérusse des Cars 가문의 귀족.
13세기 말 언급된 가문으로 지금까지 이어지는데, Pérusse는 최초의 기원이고, Cars는 이후 뿌리를 내리게 된 영지이다. [이름+가문명+지역명]의 구조는 프랑스 귀족 이름의 전형적인 형태 중 하나다.


[이름+가문명(혹은 기원)+지역/영지명]의 구조는 후대의 프랑스 귀족 이름에서 볼 수 있는 전형인데, 저 이름 구조가 계속 보존될 경우 현대에는 가문명+지역명 전체가 성씨로 인정받는다.

예컨대 위의 '드 페뤼스 데 카르' 가문은 오늘날 살아남은 프랑스 가문명이자 성씨이다. 역사적으로는 d'Escars라고 줄임말로 표기되기도 했고, 한쪽만 써서 des Cars라고만 부르기도 한다.


16세기를 향해 가며 성씨가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하지만, 18세기를 보더라도 여전히 성씨가 없는 귀족들도 있다.

물론 성씨처럼 보이는 호칭을 점점 널리 사용하게 되는 것은 맞지만, 그게 '가족 고유의 세습 이름'이 되었는지는 다른 이야기이다. 예컨대 자식이 부모의 성씨를 그대로 물려받았는지, 집단에서 제외되었을 때에도 그 성씨가 유지되는지와 같은 조건들이 함께 한다. 똑같은 형태인데도 어떤 사람은 성씨가 아닐 수가 있다.

※ 여기서 우리는 '현대의 성씨'를 기준으로 말하고 있다.

시대이름부모의 지역/가문명
18세기Maria Antonia Josepha Johanna
마리아 안토니아 요제파 요한나
von Österreich-Lothringen
폰 외스터라이히-로트링겐
마리 앙투아네트의 결혼 전 이름. '마리아 안토니아 요제파 요한나'가 태어났을 때 받은 세례명이다.

'폰 외스터라이히-로트링겐'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통치 지역을 설명하는 호칭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름에서 '폰 외스터라이히-로트링겐'을 보면 성씨처럼 보이지만 현대의 성씨와는 다르다. 그녀의 아버지 프란츠 1세(Franz Stephan von Lothringen)는 로트링겐 공작이었고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Walburga Amalia Christina von Österreich)는 오스트리아 대공이었기에, 둘을 합쳐서 '오스트리아와 로트링겐의(von Österreich-Lothringen)'라고 부른 것이다.

저걸 '합스부르크-로트링겐' 의 새로운 가문명으로 볼 수는 있겠으나, 당시의 저런 가문명이나 왕가의 이름은 오늘날의 가족 성씨와는 차이가 있다. 오늘날처럼 부모의 성씨를 물려받고 불변하며 세습되는 이름이 아니다. 당대에도 그녀의 형제들을 보면 '불변하는 성씨'가 아니라 상황에 따른 굉장히 다양한 호칭으로 부른다. 왕실명을 기반으로 한 가변적인 호칭은 우리가 오늘날 말하는 성씨와는 차이가 있다.

그런 의미에선 1774년 18세기에조차 여전히 현대적 개념의 가족 세습 성씨(family name)를 사용하지 않았단 것인데, 어찌 보면 왕가의 특징인 것도 같다.


참고로 이베리아 반도 지역에서는 부모의 성씨를 모두 물려받는 것이 규칙화되어서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한 마디로 성씨가 두 개 이상인 문화인데, '유럽인의 긴 이름'에 대해서는 다음 연재에서 이야기하겠다. 또한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세례명을 여럿 받게 된 관습에 대해서도 다음 연재에서 이야기하겠다.


시대이름가문명지역명작위/신분 호칭
18세기Gabrielle Émilie
가브리엘 에밀리
Le Tonnelier
르 토넬리에
de Breteuil
드 브르퇴이
du Châtelet
뒤 샤틀레
줄여서 '에밀리 뒤 샤틀레(Émilie du Châtelet)' 후작부인. 프랑스 귀족.


뒤 샤틀레 후작부인의 이름을 완전히 전체 호칭으로 부르면, '가브리엘 에밀리 르 토넬리에 드 브르퇴이, 마르퀴즈 뒤 샤틀레(Gabrielle Émilie Le Tonnelier de Breteuil, Marquise du Châtelet)'가 된다. 여기서 '마르퀴즈 뒤 샤틀레'는 '샤틀레 후작 부인'이란 호칭이다. '르 토넬리에 드 브르퇴이' 부분은 전체가 성씨로 현재 인정 받고 있다. 정작 당대의 표기를 보면 '르 토넬리에'만 쓰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유럽인의 이름은 시대가 갈수록 점점 길어져서 근대에는 굉장히 길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간혹 만화 등에서 보이는 '귀족의 이름은 길어야 한다'라는 선입견은 저기서 온 걸 수도 있고, 혹은 고대 사람의 이름이 비교적 긴 편인 것에서 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근대 유럽인의 이름은 긴 것이 일종의 유행이었고, 귀족이 아닌 자들의 이름도 길었다. 이 이야기 역시 다음 연재에서 하도록 하겠다.



(다음 편에 계속)




※ 이름과 성씨 연재는 아마도 다음 편이 마지막입니다. 주제는 '미들네임과 긴 이름'이고요. 웬만하면 한 편으로 쓰려고 생각 중입니다. 일주일 이상 텀을 두고 올리겠습니다.


fantasy| 2023-09-23 00:00:00 | [Comment(0)]




문득 떠올려 보면 문제점은...
 

어쩐지 요즘 너무 열심히 연재 글을 쓰고 있고 정작 개인 홈페이지다운 잡담(?)은 거의 안 올리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 연재 올리는 텀을 보니까 진짜네요. 올해는 이런저런 일들이 있어서 연재를 대충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작년 만큼의 페이스인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문제점은 애초에 짧게 끝나야 했을 중세 가족 연재를 엄청나게 길게 늘려서 여기까지 온 자업자득입니다만... 왜 이렇게 되었는지 으음... 본래 계획이라면 몇 달 전에 판타지 연재 장기 휴재에 들어간 후 올해 말 무술 연재를 구상하며 느긋하게 있었을 터였는데 말이죠.

참고로 지금 페이스면 무술 연재는 내년 중순 쯤에나 올리기 시작하겠네요. 특히 이번 성씨 연재를 하면서 내용이 많은 연재는 일단 끝까지 개요와 골격을 만들고서 써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__)


일단 이 글은 잡담이고 3편은 예정대로 토요일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이번 달부터는 다시 술 연재도 올릴... 수 있나? 벌써 22일이네요.

일단 술 연재는 생각해 보면 제가 초심을 잊고 있었습니다. 술에 대해 모르는 분들이 술 가게에 가서 당황함을 보조하고 싶었던 그 마음을 잊었어요.

술 연재 후반부로 오면서 제 취향의 글만 올리고 너무 단순한 건 '이런 것까지 올려야 하나'하면서 넘어갔었는데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다음 글은 '리큐르란 무엇인가?'입니다.


예. 아무튼 문득 정신이 들고서 홈페이지의 현 상황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_-; 여기가 무슨 역사 연재방도 아닌데 요즘 잡담이 너무 없는 것 같아서 일단 아무 말이나 써 봅니다.


freetalk| 2023-09-22 07:42:00 | [Comment(0)]




중세 서유럽의 성씨(2) : 성씨로 변한 별명과 호칭
 

1. 성씨가 부활한 11세기

서로마 멸망 후 유럽에서 성씨가 사라지고서 5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일반적으로 유럽에 성씨가 다시 생겨난 이유는 한정된 세례명으로 이름 중복이 많아진 상황에서 인구 증가로 개인 식별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유럽 각 지역의 초기 성씨들은 11세기라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발생했다. 프랑스 등의 귀족들이나 이탈리아의 대도시 등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영국에는 정복왕 윌리엄의 노르만 정복(1066)을 계기로 도입되었다.

그동안의 연재에서 보았듯 서유럽은 12~13세기 즈음에는 정부 조직이 더 치밀하게 발전하고 문서화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는데, 그런 발전 과정에서 개인을 기록하고 식별하기 위한 노력 역시 성씨의 탄생과 보급에 반영되었을지도 모른다.




2. 중세 유럽에 정말 성씨가 있었을까?

부활했다고 하고서 뜬금없는 질문인데, 중세에 정말 성씨란 게 있었을까? 중세 사람들은 성씨를 갖고 있었을까? 사회 보편적으로 보면 '갖고 있지 않았다'가 옳은 대답이라고 본다.

11세기 중세 성기(中世盛期, High Middle Ages, 11-14세기) 무렵에 귀족을 중심으로 성씨가 생겨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성씨라는 개념이 재발명되어 도입되어가는 관점에서 '있었다'는 것이지, 중세 후반부의 이름 시스템에 성씨가 보편적으로 정착했다는 뜻은 아니다.

중세 유럽에서 귀족은 대략 인구의 5% 전후의 비율을 차지했다. 귀족 모두가 성씨를 가졌다고 해도 나머지 90% 이상 인구의 대부분은 성씨를 갖지 않은 것인데, 실제론 귀족조차 성씨가 보통은 없었으니 중세와 성씨는 서로 꽤나 먼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애당초 성씨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성씨란 게 그렇게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라고 인지를 하지 않았다.

성씨가 등장한 본래의 이유는 중복되는 이름 사이의 개인 식별을 위한 추가적인 이름이었고, 지난 이름 연재에서 보았던 '별명'과 '호칭' 따위로 사용되던 것들의 일부가 훗날 성씨라는 형태로 정착을 하게 된다. 어떤 가문은 이걸 일찍 도입했지만, 대부분은 아니었다.



15세기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성씨가 없었다.
'다빈치(da Vinci)'는 유럽식 성씨와 완전히 같은 형태이지만 성씨가 아니다.
'빈치 마을' 출신 사람들이 공유하는 출신지를 설명하는 별명일 뿐이다.


'성씨'를 영어로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family name인데, '가족 이름'이란 뜻이다. 성씨라는 건 '가족 안에서 세습되어 자녀에게 대대로 전해지는 이름'을 말한다.

본래는 '별명'이었던 성씨가 사회에 보급되어 정착한 것은 보통 16세기 이후를 말하는데, 그 이전 시대의 '성씨처럼 보이는 것들'은 훗날의 성씨와 모습이 같다고 하더라도 ① 자식에게 세습되지 않는 단순 별명이거나 ② 위의 다빈치처럼 '가족'의 이름이 아닐 수도 있으며 ③ 소수의 사람들만 사용하는 보편적 문화가 아닐 수 있다.

무엇보다도 성씨가 정말로 거의 모든 사람에게 보급되는 건 19~20세기에 와서의 일인데, 이유는 근대국가가 성씨를 의무로 강제했기 때문이다. 국민 개개인을 기록하고 관리하고 세금을 부과하기 위한 행정 목적으로 '법'을 통해 강제한 것이 현대의 성씨이다. 예나 지금이나 개인식별이 가장 큰 목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 이 연재에서 말하는 '과거의 성씨'라는 건 시대에 따라 보급된 정도에 큰 차이가 있으며, 법으로 형태를 규정하고 의무화 한 오늘날의 성씨 개념과는 다르다는 걸 기억해 두시면 좋겠다. 성씨가 보급되었다는 16~17세기 경만 찾아봐도 성씨 없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3. 사람을 부르던 전통적인 방법과 성씨

사람이나 가족을 부르는 한국어 표현을 보면 '전주댁(전주에서 시집온 여자)'라거나 '철수 아빠', '영희네 딸' 같은 식으로, 지역이나 가족 관계를 기준으로 특정 개인을 부르는 방식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성씨가 만들어지게 된 방식을 보통 4가지 정도로 분류하는데, 정확히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는 전통적인 사람을 부르던 방식들이 훗날 특정 가족을 부르는 성씨로 변하게 된 것이다.

※ 아래에 예시로 나온 성씨들은 중세의 성씨로 한정 짓지 않았습니다.

① 지역명 기원 성씨
합스부르크(Habsburg)가문 소유의 성(castle)에서 기원.
뉴턴(Newton)새로운 마을.
힐튼(Hilton)언덕 마을.
스탠리(Stanley)돌이 많은 개간지.
바흐(Bach)하천.

지역 기원 성씨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며 귀족의 성씨가 많이 해당된다. 귀족들은 자신들의 영지나 가문의 기원, 혹은 중요했던 장소를 성씨로 많이 삼았다. 위의 '합스부르크'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다른 예들처럼 비귀족의 성씨 역시 지명에서 많이 유래했다.

참고로 일본의 경우도 지명 기원 성씨가 엄청나게 많은데, 근대화가 되면서 평민에게 강제로 성을 갖게 만들 때, 편의성과 속도를 위해서 그 사람이 사는 지역의 특징을 땄기 때문이다. 다나카(田中, 밭 가운데), 기노시타(木下, 나무 아래), 다카하시(高橋, 높은 다리), 모리(森, 숲) 등등 굉장히 흔하다.


② 직업명 기원 성씨
스미스(Smith)대장장이.
슈미트(Schmidt, 독일어)
페라리(Ferrari, 이탈리아어)
테일러(Taylor)재봉사.
베이커(Baker)제빵사.
슈베르트(Schubert)신발 만드는 사람.
메디치(Medici)약재상.


특히 비귀족층은 직업명이 성씨가 된 경우가 많았다. 스미스, 테일러 등등... 과거에 특히나 중요했던 '대장장이'를 기원으로 한 성씨는 전 세계에 다양한 형태로 퍼져 있다. 은행가 집안이었던 로스차일드(Rothschild)는 꽤 재밌는 예인데 '붉은 방패'라는 뜻이다. 자신의 점포의 간판에 그려진 문양을 성씨로 만들었다

예전 연재에서도 봤던 '마샬(Marshall)'과 같은 관직이나 직책명이 그대로 성씨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비귀족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외에 아래와 같이 신체적 특징 등 별명을 기원으로 한 성씨가 있다.

③ 별명 기원 성씨
카메론(Cameron)굽은 코.
고르바초프(Gorbachev)곱추.
암스트롱(Armstrong)강한 팔.


조금 다른 경우이지만 다윈(Darwin)은 원래 '친애하는 친구(dear friend)'라는 뜻의 Deorwine이란 '이름'이 '성씨'로 변한 경우인데, 이런 식으로 이름이 성씨가 되어 바뀌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마지막 네 번째는 부모의 이름에서 기원한 성씨인데, 이건 아래에서 따로 살펴 보자.




4. 부모의 이름으로 자식을 부르던 전통

부모을 사용해서 아이를 부르는 것은 작명의 역사에서 정말 중요한 개념이다. 사람을 부모와 연관지어 관계로 부르는 건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할 정도로 오래 되고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많은 문화권에서 자녀를 부모의 이름을 따서 불렀으며, '성씨'로 취급되지 않더라도 자식의 이름에 부모나 조상의 이름을 집어넣는 규칙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이때 아버지의 이름을 딴 방식을 '부칭(父稱, patronymic)'이라고 하고 어머니의 이름을 딴 방식을 '모칭(母稱, matronymic)'이라고 한다. 부계명/모계명 등으로도 부른다.

성씨 역시 부모의 이름을 기원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s나 -son, -sen 등으로 끝나는 성씨(혹은 이름)는 '○○의 아들'이란 뜻으로 부모의 이름으로 부르던 흔적이 남은 것이다.

-s/-son/-sen이 붙는 성씨존스(Jones)존(John)의 아들.
존슨(Johnson)
얀센(Jansen)
앤더슨(Anderson)앤드류(Andrew)의 아들.
안데르센(Andersen)
제퍼슨(Jefferson)제프리(Jeffrey)의 아들.


이런 부칭사나 모칭사는 지역 문화권에 따라 특정 언어의 형태로 남는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으로 오(O')나 맥(Mac)이 붙으면 아일랜드 혹은 스코틀랜드 문화권의 성씨이다.

O'-가 붙는 성씨오브라이언(O'Brien)브라이언(Brian)의 피를 잇는 아들.
오하라(O'Hara)에이라(Eaghra)의 피를 잇는 아들.
Mac-이 붙는 성씨맥도날드(MacDonald)도날드(Donald)의 아들.
맥아더(McArthur)아서(Arthur)의 아들.
맥과이어(McGuire)'오르(Odhar)의 아들'의 영어 형태.
맥킨토시(Macintosh)우두머리(chief)의 아들.


재미있는 건 '~의 아들'을 의미하는 O'-같은 접두사는 오늘날 고정된 성씨로 남았지만, '~의 딸'을 의미하는 Ni 같은 접두사는 오늘날은 찾아 보기 어렵다.


부모의 이름, 특히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는 방식은 전 세계에 굉장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데, 이들의 일부는 성씨가 되고, 일부는 미들네임 등 다른 형태로 남기도 했다. 기독교 시대엔 아버지의 이름이 보통 세례명이었기에, 이 방식을 '세례명 기원의 성씨'라고 말하기도 한다.

참고로 부칭 성씨가 매우 많은 또 다른 이유는 19~20세기 현대 국가들이 성씨를 갖도록 강제했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의 유럽인들은 갑자기 성씨를 만들어야 하는 과정에서 간편하게 아버지의 이름 많이 땄다고 한다.




5. surname과 family name

앞서 설명했듯 일반적으로 유럽 성씨의 발명과 보급은 세례명의 중복과 인구 증가를 이유로 말한다. 오늘날 'surname'과 'family name'은 영어에서 '성씨'라는 완전히 같은 뜻으로 사용되지만, 중세에 사용되던 초기의 모습을 보면 이와 관련된 차이점이 있다.

본래 surname은, 예를 들어 장부에 같은 이름을 가진 영지민들을 구별하기 위해서 적은 추가적인 이름, 즉 별명이었다. 대장간집 존은 존 스미스(대장장이란 뜻)로, 대머리 존은 존 발라드(대머리란 뜻)로 적는 식이랄까. 거주자를 조사하고 세금을 물리기 위해서 이름을 기록하던 초기의 흔적이다.

최초의 surname은 가족명이 아니라 특정 개인을 식별하기 위한 별명이었고, 자식에게 세습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대대로 물려주는 가족 이름이 되었기에 오늘날엔 'family name'과 구별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아주 오래 전부터 전통적으로 누군가를 지역/장소, 직업, 특징, 가족 등의 관계를 통해서 부르던 호칭들이 10세기 이후 중복되는 이름이 많아지면서 개인을 식별하기 위한 부가적인 별명이자 설명으로 부각되었다. [중세 서유럽의 이름 (2) : 언어에 따른 변화와 별명과 애칭]에서 언급한 닉네임(nickname), 소브리켓(sobriquet) 등도 그런 것들이다.

그리고 시간이 오래 흐르면서 단순히 개인을 식별하거나 설명하기 위한 이름을 넘어서, 가족 고유의 세습명으로 자리 잡은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성씨들이다.


참고로 서양은 동양에 비해 성과 이름을 용어로 확실하게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영어로 '성씨'를 surname/family name/given name/last name 등으로 쓰는데, 모두 '이름(name)'이라는 말이 붙는다. 성씨 자체를 이름의 하나로 보는 방식이다. 로마의 이름도 그렇고, 지역에 따라서는 성씨와 이름이 미분화 된 지역도 있다.

과거 서양에서 '추가적인 이름'이나 '별명', '칭호' 들이 매우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후대에 그것이 성씨로 전환된 것은 이름에 대한 이런 인식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중세 서유럽의 성씨(3) : 귀족의 성씨와 드(de)와 폰(von)]으로 이어집니다.◀





fantasy| 2023-09-20 00:00:00 | [Commen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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