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추천하는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 Monini Extra Virgin Olive Oil Classico
늘 그렇듯이 광고 아닙니다. 오랫동안 쓰고 있어서 언젠가 한 번 소개하려고 했는데 그냥 그 날이 오늘이 된 것이죠.
제가 요리를 나름 본격적인 취미의 하나로 받아들인지 이제 4~5년 이상 된 것 같습니다. 성격 탓인지 참 찾아 본 것도 많고 따로 공부한 것도 많았고요.
그렇게 요리를 하던 초기에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이하 EV 올리브 오일)을 찾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마트랑 백화점에서 파는 올리브 오일은 거의 다 사서 먹어본 것 같아요. 솔직히 3만 원대 이하에선 다 고만고만했습니다.
하지만 요리를 할수록 알게 된 것이, EV 올리브 오일은 단순히 조리용 기름이 아니라 일종의 조미료랄까 맛에 꽤 많은 기여를 하는 종류의 재료였습니다. 그리고 사실 모든 기름은 각자의 맛이 있어서 아무 기름이나 아무 요리에 쓰면 안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다시 리서치를 하고 이것저것 먹어 보다가 찾게 된 게 아래의 올리브 오일입니다. 모니니죠.
모니니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은 유럽의 요리사들의 리뷰를 리서치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 리뷰에서 추천하는 EV 올리브 오일 리스트를 쭉 뽑고서 중복되는 것들의 순위를 매겼는데요. 그 중에서 다시 한국에 수입되어 파는 걸 먹어 보고 결정을 했죠.
모니니는 간단히 평하자면, 가격이 싸지만 맛과 풍미도 뛰어난 가정용 가성비 EV 올리브 오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선 매장에 따라 다른데 1L 기준 약 15,000원+ 정도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백화점에서 3만 원대에 팔고 있는 여타 올리브 오일에 비해서 더 분명하고 풍부한 풍미를 자랑하죠.
모니니는 일상적으로 사용하기에 매우 좋습니다.
이탈리아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인지도가 높고요.
5만 원 이상의 EV 올리브 오일 중 더 괜찮은 것들도 있지만, 일상 요리에서 사용하는 1만 원대의 가격에선 모니니와 비교할 급은 국내엔 없다고 생각합니다. 1리터 3만 원대까지도 거의 적이 없습니다. 한 숟갈 드셔 보시면 아실 겁니다.
어쩌면 기름을 따로 먹어본다는 것에 저항감을 느끼는 분도 계시겠지만, EV 올리브 오일은 요리가 완성된 후에 위에 풍미를 위해 뿌리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맛이 중요한 재료입니다.
당연히 Lorenzo가 더 고급이지만, 500ml에 4~5만 원 선으로 가성비가 완전히 다릅니다.
공들인 좋은 요리에 쓰느냐, 매일 일상적으로 쓰느냐의 용도가 다른 거죠.
모니니를 예전에 발견하고서 좀 더 써 보다가 한 번 소개해야지 했는데 몇 년이나 지났네요. 지금도 평소에 가장 많이 쓰는 요리용 기름입니다. 가성비 대 풍미가 정말 좋습니다.
단점(?)은 아무데서나 다 팔지는 않고 파는 곳에서만 팝니다. 예를 들어 킴스클럽 강남점이라거나 잠실 롯데백화점에서는 봤고 다른 몇몇 군데에도 있더군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에서도 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제가 예전에 처음 쓸 때보단 훨씬 파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어떤 곳은 가격을 매우 비싸게 받는데 1L인데 가격이 2만 원대 이상이면 다른 데서 사시는 게 낫습니다.
아무튼 오랜만에 사용하고 있는 물건 추천이었습니다. 제가 추천하는 건 엑스트라 버진으로 Classico이고요. 올리브 오일은 먹어 보면 바로 느낌이 오니, 다른 것들과 직접 비교해 보시면 재미있으실 겁니다.
사실 프로 요리사들은 좋은 EV 올리브 오일 안에서도 (요리마다) 다시 풍미의 방향성을 따지긴 하는데, 홈쿡인데다가 국내 환경이란 제한 때문에 그 정도까진 보통 필요 없을 거라고 봅니다. 저는 EV를 쓸 땐 거의 대부분 모니니를 쓰고 필요할 때만 로렌초를 씁니다.
예전부터 종종 마음에 걸리던 주제인데, 마침 며칠 전에 읽던 웹소설에서 정신과 의사와 상담사를 혼동하는 대목이 나와서 적어봅니다.
※ 참고로 이 글은 웹소설 등에서 정신과와 상담 치료를 혼동하는 것에 대한 글입니다. 정신과 의사와 심리 상담사 모두 훌륭한 직업이고 한 쪽의 편을 들거나 폄하할 의도는 없습니다. 차이점을 강조해서 쓰다 보니 노파심에 남깁니다.
1. 정신과 의사는 상담사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의사(medical doctor)'는 서양 의학을 기준으로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는 직업이다. 그 이외의 직군은 '의사'라고 부르지 않는다. 물론 한국어의 '의사'는 조금 더 범위가 넓긴 한데 학문이나 서양의 기술 면에서 보면 그렇다.
정신과는 우리나라에서 아주 오랫동안 '정신이상자가 가는 병원'이란 낙인이 찍혀 있었다. 전통적으로 정신과에 가는 사람은 진료 사실을 숨겼고, 과거에는 회사에 정신과에 갔던 사실이 발각될 경우 영원한 인격모독과 따돌림은 기본으로 해고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가 극히 최근에 와서야 정신과에 대해서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한 것 같다.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인지, 정신과가 정확히 무슨 치료를 하는지 사람들이 잘 모른다. 보통 '정신 문제'라고 하면 상담치료를 떠올리지만 그건 정신과 의사의 일이 기본적으론 아니기 때문이다.
2. 현대 과학에서 인간은 생체 기계에 가깝다
이 소제목은 약간 위험한 발언이고 저렇게 단언하긴 어렵지만, 오늘 글의 방향성을 위해서 써 보았다. 과학적으로 인간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기계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인간에 대해서 매우 높이 평가하면서, 다른 동물이나 자연과 다른 인간의 우수함과 유일함을 흔히 예찬한다. 본인이 의식하지 않아도 말 속에 이미 그런 개념이 들어가 있다. 인간에겐 영혼이 있고, 인간은 기계와 다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영혼이란 부분을 과학적으로 단언하기 힘들지만, 의학에서 인간에 대해서 오랜 경험과 연구 끝에 알아낸 것들이 있다. 바로 인간의 감정은 약으로 조정할 수가 있단 것이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호르몬 등의 생체 전달 물질에 의해 변한다. 그 부분을 약으로 건드릴 경우 우울했던 사람도 기뻐질 수 있고, 기쁜 사람도 우울하게 만들 수 있다. 수면제를 먹으면 잠이 드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서양 의학의 정신과는 정신적인 문제를 질병으로 보며, 주로 약을 통한 과학적인 의술로 해결하고자 한다. 예컨대 우울증에 걸릴 경우 우울증 약을 먹으면 우울하지 않게 된다. 인간의 감정은 약으로 조절이 가능하며, '질환'에 가깝게 치우친 정신 상태를 이런 방식으로 치료하는 게 정신과다.
3. 정신과 진료는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다
이건 감기약과 매우 비슷하다.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서 약을 먹는 것을 대증요법(對症療法, 증상에 대한 치료법)이라고 한다. 우리가 먹는 감기약은 보통 열을 내리고 통증을 완화하는 해열진통제, 코감기(콧물이나 자가면역반응) 증상을 완화시키는 항히스타민제, 가래를 나오게 하는 거담제 등의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이다. 감기 바이러스 자체를 공격하는 약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대증요법을 우습게 보지만, 단순하게 보면 감기의 심한 증상을 없앰으로써 우리는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감기에 걸려도 회사에 가고 일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 몸 자체가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이 실제 치료에도 도움이 많이 된다.
어떤 사람이 우울증에 걸렸을 때, 아마도 우울증의 원인이 된 어떤 심리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신과에서 그 원인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정신과에서는 '우울증에 걸린 현재 상태' 자체를 해결하려 하고, 그걸 위해서 약을 처방한다. 진료를 볼 때 하는 상담은 증상을 파악하기 위함이지, 상담사처럼 원인을 해결하고 환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래서 많은 환자들이 정신과에 갔다가 실망하고 의사를 욕하곤 한다. 그들이 보통 떠올리는 '정신 문제 해결'은 나를 이해하고 도움되는 말을 해 주길 바라는 심리상담사이기 때문이다. 특히 몇 십 년 전의 전통적인 양의사들은 이런 방식의 심리 치료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많은 환자들이 실망하지만, 정신과 약은 환자의 상태를 즉각적으로 호전시킨다. 왜냐하면 '인간의 감정'을 조절하는 장치를 약으로 건드리기 때문이다. 원인을 해결하지 못했다고 해도, 약을 먹는 동안은 증상에서 벗어나서 정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당장 내일 자살할 사람을 살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럼 평생동안 약을 먹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겠지만, 인간의 몸이란 정상적인 심리상태가 오랫동안 유지되는 것만으로 스스로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이 있다. 마치 감기약을 먹으며 증상을 완화시키면 스스로 몸을 낫게하는 것처럼 말이다. (참고로 이건 매우 복잡하고 민감한 이야기로, 이건 하나의 예를 든 거라고 봐 주시면 좋겠다. 인간의 심리는 쉽게 건드리기가 어렵다.)
4. 심리 상담사
의사가 약으로 정신적인 증상을 즉각적으로 해결해 준다면, 상담사는 상담을 통해서 환자의 마음을 돕는다. 모든 사람이 상담으로 문제를 해결하진 못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상담을 통한 치료로 위안을 얻고 문제를 해결한다. 흔히 생각하는 '정신 치료'는 정신과가 아닌 상담사와의 심리상담이다.
단지 상담 치료라는 건 '약'처럼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과의 보장이 안 된다. 상담사 역시 완벽하지 않은 인간 중 하나이기 때문에, 상담사 개개인의 역량에 크게 좌우되기도 한다. 피상담자와 상담사의 성향이 잘 맞는 것도 중요하다.
정신과 의사는 의사 면허를 가진 정식 의사이다. 심리 상담사는 마찬가지로 상담사 관련 자격증이 있지만 의사는 아니다. 의료 처방을 하진 못한다. 자격증에 따라 다시 종류가 나뉜다.
상담 치료 역시 분명히 환자에게 도움이 되며, 정신과 진료와 병행하기도 한다는 걸 밝혀두고 싶다. 단지 오늘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은 '창작물에서 생각하는 정신과'라는 게 보통 '의사'가 하는 일이 아니라 '상담사'가 하는 일이란 거다. 병원에 가 봐야 정신 상담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순 없다.
5. 심리학은 만능이 아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인데, 작가들을 보면 심리학을 공부하고서 글이나 만화를 창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건 분명 좋은 자세이지만, 이런 작가들은 '현대 학문 만능주의'란 함정에 빠지기가 쉽다. 사실 과반수의 작가들은 그런 성향을 보인다.
심리학은 분명 인간의 심리를 파고 들었고 나름의 설명을 하려고 애쓰고 있다. 문외한이 보면 매우 그럴듯해 보이며, 실제로도 어느 정도 인간 심리를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의학이나 과학 분야가 모두 그렇듯이 모든 걸 다 아는 것도, 제대로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학문이란 건 결국 어떤 현상을 관찰하고 가설을 세우고 검증을 하면서 점점 영역을 넓혀가는 분야이다. 21세기 수준의 학문은 인간이나 자연에 대해서 그리 잘 알지 못한다. 이런 한계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학자 본인들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현대 과학과 학문의 우수성에 매료되어서 마치 우리가 대부분의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을 하며, 작가들은 학문 영역을 공부하고서 그것으로 인간 심리 문제를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실제로 어떤 사람이 마음의 상처를 깊게 입으면, 그리고 심리에 이상이 생기면, 그 문제는 평생 안고 가야하는 경우가 많다. 약간 다른 얘기지만 의학적으로 '트라우마'에 걸린 사람은 뇌의 구조가 비가역적으로 변해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트라우마는 이젠 일상에서 사람들이 쉽게 말하게 된 가벼운 의미의 트라우마가 아니다.)
작가들이 저런 글을 쓸 때 늘 아쉬운 점은, 자신이 쓴 글을 읽고서 심리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크게 상처 받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심리 문제는 정확한 방법을 통해 얍! 하고 해결이 가능한 게 아닌데, 작가들은 글에서 그걸 매우 쉽게 해결하기 때문이다. 그 고통과 아픔과 영원히 지고 가야할 업을 이해하지 못한다. 마치 방법만 알면 매우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증상처럼 보이게 한다.
재미있는 건 전문성이 가미된 글을 쓰면 대다수의 독자들은 열광한다는 것이다. 정신 문제에 대해서 파고 들어서 해결하는 대부분의 글들은 작가와 독자 모두가 학문 만능주의에 빠져서 환호한다. 오직 진짜 그 분야를 알거나 겪은 사람만이 그게 심각하게 잘못되었고, 사람들에게 오해를 심는다는 걸 안다.
심리 문제는 많은 경우 완전히 치료하지 못한다. 완화시키고 받아들이고, 그 흉터와 비교적 가볍게 된 상처를 안고 남은 인생을 사는 것이다. 정말 소설처럼 완치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6. 마치며...
가볍게 정신과와 상담에 대해서 쓰려고 했는데, 그동안 읽었던 창작물들이 떠올라서 조금 더 길어진 것 같다. 위의 내용은 정신과와 상담의 특성을 다소 강조해서 썼는데, '전통적인' 의사와 상담사라고 보시면 좋겠다. 요즘은 의사들도 더 열려 있다.
결론적으로 정신과는 상담 치료를 하는 곳이 아니며, 약으로 증상을 치료하는 곳이다. 인간의 감정과 정신은 약으로 조정이 가능하다. 상담을 하는 것은 의사가 아닌 상담사이다. 심리 상담사 역시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훌륭한 직업이다.
정신 문제는 작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그리고 완전히 치료되지 못한다. 매우 오랜 시간 동안 관리해야 하며, 환자 본인은 결국 영원히 안고 가야 한다. 정신 문제를 주인공이 '얍' 하고 해결을 해서 감기처럼 낫게 하는 모습을 덜 보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글은 환자를 상처 입히고, 사람들에게 잘못된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
한국어를 영어로 표기할 때 보통 ㄱ은 g, ㅋ은 k로 표기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어렸을 때부터 g는 ㄱ이고 k는 ㅋ이라고 배우죠.
하지만 사실 모든 언어는 서로 발음이 매우 다르고, 우리가 보통 모음의 다름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자음 역시도 매우 다릅니다. 왜 우리는 '김'을 영어로 'Kim'이라고 쓰고, (지금은 바뀌었지만) '부산'을 'Pusan'이라고 쓸까요? 그렇게 쓰는 게 외국인 입장에선 똑같이 들리기 때문입니다.
※ 이 글은 일본어 때문에 꺼낸 이야기이지만, 영어에서도 같은 개념이 성립하기 때문에 둘 다 이야기하겠습니다.
1. 어딘가 어색한 외국인의 발음
요즘은 외국인이 한국어로 말하는 모습을 TV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오래 한국에 살아서 말을 꽤나 잘 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솔직히 정말 '한국인 같은 자연스러운 발음'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필자가 본 경우에서만 따지면 세 손가락을 채우지도 못한다.
이유는 모든 언어의 자음과 모음은 발음하는 방식이 대부분 다르기 때문이다. 그 다름은 턱과 이빨, 혀,성대가 배치된 모양의 차이에서 온다. 하모니카와 트럼펫은 소리의 원리는 같지만 들리는 결과가 다르다. 소리를 만들어내는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결과물도 달라진다.
인간은 갓 태어난 아기일 때는 짐승 소리를 낸다. 언어가 아닌 '소리'를 뱉는다. 하지만 말을 배워가며 각자의 언어 따른 조음(調音) 방식으로 입과 목이 맞춰진다. 의식하지 않아도 말이다.
말 뿐만 아니라 소리를 듣는 귀와 뇌 역시도 자기 언어에 맞춰진다. 그 결과 성인이 되면 '자기 언어'를 기준으로 외국어를 발음하고 듣게 된다. 외국어는 '듣기 평가'를 봐야 할 정도로 듣지 못하게 된다.
한국어는 예사소리인 ㄱ과 거센소리인 ㅋ, 된소리인 ㄲ을 구분하는 언어이다. 여기서 ㄱ/ㅋ은 소리의 강도, (한국인 입장에선) 소리가 파열하는 강도를 통해 구분하고, 된소리인 ㄲ은 이론적으론 기식(氣息)을 뱉지 않는 무기음에 해당한다.
하지만 영어 등의 서양 언어나 일본어의 경우, 이런 방식으로 소리를 구분하지 않는다. 예사소리/거센소리/된소리의 구분은 서양인이나 일본인에게는 구분의 의미가 없다. 같은 소리의 범위에 속하는 발음이기에, 그들의 귀에는 똑같이 들린다.
그렇기에 외국인이 발음하는 한국어는 거센소리/된소리/예사소리의 구분이 애매할 때가 대부분이다. 김밥이 '킴팝'이 되고, '부산'이 '푸싼'이 되며, '떡볶이'가 '톡포키'가 된다.
그들에겐 그런 발음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들어서 구분하지 못하니 말할 때도 구분하지 못한다. 발음을 하는 사람 스스로가 차이점을 알지 못한 채 흉내낸다.
이는 ㄱ/ㅋ과 g/k가 근본적으로 다른 발음이기 때문이다.
2. 성대의 울림 : 유성음(有聲音)과 무성음(無聲音)
성대(聲帶)는 목에 있는 조음 기관으로 소리를 만드는 핵심 역할을 한다.
우리가 말할 때 성대가 울리면서 나는 소리를 유성음(有聲音)이라고 하고, 성대가 울리지 않으면서 나는 소리를 무성음(無聲音)이라고 한다.
이 구분은 한국어를 발음할 때는 중요하지 않다. 원래 우리말엔 없던 구분법으로, 서양에서 들어온 개념이다. 한국어는 앞서 말했듯 소리의 강도와 파열 등으로 구분한다.
하지만 한국어에서와 달리, 영어/일본어의 g와 k는 성대가 울리냐 울리지 않느냐로 구분한다. g는 성대가 울리는 유성음이고, k는 성대가 울리지 않는 무성음이다. 일본어에선 が(ga)는 유성음이고 か(ka)는 무성음이다.
그들은 소리를 만들어 뱉을 때도 이 방식을 사용 하고, 소리를 들을 때도 유성음과 무성음을 구분해서 소리를 듣는다. 반대로 이 차이는 한국인의 귀에는 분간이 되지 않는다.
이건 어렸을 때부터의 훈련의 차이이다. 듣고 발음하는 방법이 몸에 완전히 스며들어서, 어른이 되어서는 바꾸기 어렵다. 자기 문화권의 소리가 너무 당연해서, 이런 개념이나 차이가 존재하는지조차 모르게 된다. 한국인은 자연스럽게 ㄱ/ㅋ/ㄲ를 구분하고, 외국인은 자연스럽게 g/k를 구분한다.
한국어의 ㄱㅋㄲ를 유/무성음을 기준으로 구분하면 아래와 같다.
유성음(g)
무성음(k)
단어의 첫 글자가 아닌 ㄱ
단어의 첫 글자인 ㄱ
ㅋ
ㄲ
수고
가위 카메라 까마귀
한국어는 단어의 첫 번째 글자를 유성음으로 발음하지 않게 되어 있다. 평생 그렇게 훈련이 되었기에, 단어 첫 글자를 성대를 떨며 발음하지 못한다. (의식적으로 이 콘트롤을 하지를 못한다.)
그래서 '김'은 '첫 글자 ㄱ'이기 때문에 무성음이 되고, 외국인의 귀에는 'Kim'으로 들린다. '킴밥', '킴철수', '킴치'. 한국어 맞춤법의 외래어 표기법은 이런 특징을 반영해서 만들어진 결과다.
일본어 표기
영어 표기(발음)
한국어 표기(맞춤법 외래표기법)
キム
Kim
김
豊臣
Toyotomi
도요토미
徳川
Tokugawa
도쿠가와
※ 원래 일본어를 설명하려다가 나온 이야기임을 참고해 주세요.
'도요토미'나 '도쿠가와'의 첫 글자는 엄연히 T 발음이지만, 한국어의 외래어 표기법(일본어)은 이걸 'ㄷ'으로 표기하도록 규정한다. 왜냐하면 어차피 '도쿠가와'라고 발음해도, 일본인이나 서양인 귀에는 'Tokugawa'로 들리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성대를 울리는 소리를 의도적으로 만들지 못한다. 그런 구분법은 한국어에 없었고, 그냥 말하다 보면 성대가 울리는 경우가 있고 아닌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기'는 재미있는 발음의 단어다. '고'의 ㄱ은 무성음이고, '기'의 ㄱ은 유성음이다. 아이들이 '고기'를 '꼬기'라고 발음할 수 있다. 여기서 첫 글자 ㄱ은 무성음인데, ㄲ도 무성음이다. '고'는 '꼬'가 돼도 같은 무성음이라 자연스럽지만(?), '기'는 '끼'가 되기엔 무성음과 유성음의 차이 때문에 부자연스럽다. '꼬기'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고끼'는 너무 많이 다르다. 한국어에서 유/무성음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3. 외국인에겐 다 똑같은 ㄱ/ㅋ/ㄲ
유성음
무성음
단어의 첫 글자가 아닌 ㄱ
단어의 첫 글자인 ㄱ
ㅋ
ㄲ
한국어의 첫 번째 ㄱ이나 ㅋ/ㄲ는 모두 성대가 울리지 않는 무성음이다.
가치/까치, 곧/꽃, 기/키... 외국인에겐 같은 범위의 소리로 들려서, 들을 때도 말할 때도 구분하기 어려워 한다. 사실 인간은 듣지 못하면 발음도 못한다. 저런 상황에서 어설프라도 흉내를 내는 게 대단한 노력의 결과이다.
반대로, 이것 때문에 한국인이 일본어를 배울 때 재미있는 논쟁이 발생한다. か(ka)의 발음이 '카'인가 '까'인가에 대한 논란이다. 예를 들어 '~데스카?'와 '~데스까?' 중 뭐가 맞는 발음이냐 같은 것들.
한국 인터넷에선 이걸로 논쟁을 하다가, '까로 발음되는 상황' 같은 규칙을 만들어 내는 걸 간혹 볼 수 있다. 그런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어에서 '카'와 '까'는 같은 소리(か)의 범위에 있기에 의미가 없는 논쟁이다.
일본인의 귀와 혀에서는 ㅋ과 ㄲ은 모두 k 발음 범주에 있는 무성음이고 똑같은 소리이며, 한국어처럼 강약의 차이로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때그때 발음이 편한 쪽으로, 어떤 때는 ㅋ처럼, 어떤 때는 ㄲ처럼 소리를 낸다.
(지겨우시겠지만) 다시 한 번 확실히 말해 두는데, 일본어에는 한국식 된소리와 거센소리 구분이 전혀 없다. 둘을 똑같은 소리라고 생각한다. 어느 쪽으로 발음하든 자신의 자유다.
단지 '한국어의 표준어'에는 외래어 표기법이란 게 있다. 그에 따르면 한글로 か(ka)의 표기를 할 때는 '카' 단독으로 정해두고 있다. 그게 우리말 표준 일본어 표기법이다.
물론 한국어에 없는 발음을 한글로 정확히 표기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유사한 표기일 뿐이지만 말이다.
4. 한국인에게 어려운 유성음
외국인이 한국어 발음을 못하는 것처럼, 한국인도 유성음과 무성음을 의도적으로 내지 못한다.
그래서 k와 g 소리를 제대로 발음하는 건 긴 훈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외국인들은 한국인의 잘못된 발음을 때려 맞춰서 듣고 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인도식 영어를 들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말이다.
필자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본어 발음은 銀(ぎん, gin)과 金(きん, kin)의 구분이다. 둘 다 두 글자 길이의 짧은 발음으로 g와 k를 정확히 구분해야만 발음할 수 있는데, 한국어는 첫 번째 글자가 무성음으로 발음되기 때문에 '기'와 '키'는 외국인에겐 둘 다 'ki'로 들린다.
※ 참고로 銀은 은(silver), 金은 금(gold)라는 뜻이다.
한국인이 듣기에 銀(gin)은 성대를 울리면서 나는 소리라 상대적으로 목구멍 안쪽에서 나는 묵직한 소리처럼 들리고, 金(kin)은 일반적인 한국어의 '기'나 '키'처럼 들리는데, 훈련이 쌓이지 않는 한 구분하기가 어렵다. '묵직함'으로 구분하는 소리가 아니라, '떨림'으로 구분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5. 일본어의 뭉개지는 비탁음
여기서 필자가 일본어를 배우던 초기부터 의문에 휩싸여 있었던 발음을 하나 더 들어보자.
1분 41초부터 발음되는 대사는 아래와 같다.
わが意志(いし)こそ、わが力(ちから)。わが力(ちから)こそ、わが意志(いし)。
와가 이시 코소, 와가 치카라. 와가 치카라 코소, 와가 이시.
나의 의지야말로 나의 힘. 나의 힘이야 말로 나의 의지.
처음에 발음되는 'わが(waga)'를 보자. ga는 여기서 유성음인데, 성대의 떨림 이후 소리를 코로 빼내는 콧소리(비음)가 된다. 코맹맹한 소리는 ㅇ받침처럼 들리고, 그 뒤의 유성음 g도 성대 깊숙한 곳에서 뭉개지면서 마치 '왕아' 처럼 들린다. 이 발음을 처음 접한 일본어 학습자들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왜 が(ga) 발음이 ㅇ 발음처럼 들릴까?"
이건 도쿄식 표준어, 그러니까 '두루 사용되는 도쿄말'의 특징 때문이다. 이런 발음을 콧소리가 난다고 해서 따로 비탁음(鼻濁音)이라고 부르는데, 전통적인 도쿄식 표준어에는 が행 비탁음이 존재한다. 도쿄 이외의 방언에서도 나타나는 지역들이 있다.
6. 마치며 : ㄱ/ㅋ/ㄲ은 g/k가 아니다.
왜 이런 얘기를 길게 하고 있나 하실 수도 있지만, 이 의문은 필자가 외국어를 공부하고서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나서 얻은 해답이다. 그리고 이걸 궁금해 하는 일본어 학습자를 많이 보기도 했다.
'김밥'이 'kimbap'이 되는 이유는 한국어의 첫 번째 ㄱ이 무성음 k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거센소리와 된소리 구분을 한국식으로는 하지 못한다.
일본어의 か/た발음은 한국의 공식 외래어 표기로는 '카'와 '타'이며, 된소리 표기는 인정하지 않는다. 실제로 일본인 입장에선 거센소리(ㅋ)와 된소리(ㄲ)는 똑같은 범위 안의 같은 소리로 들린다.
우리나라 사람은 어릴 때부터 한글의 우수성을 주입 받으면서,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거의 모든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문자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렇지 않다. 물론 매우 많은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건 맞지만, 어디까지나 한국어 발음에 최적화 된 언어이다. 외국어들은 발음이 자음 모음 모두 근본적으로 다르다.
예컨대 L 발음조차도 ㄹ 받침과는 완전히 다른 구강 구조로 형성되는 발음이다. 가끔 한국 가수를 보면 'angel'을 굴려서 '앤죨'처럼 발음하는 경우가 있는데, L 발음의 차이를 모음의 차이로 착각하고 있는 경우다. 익히 알려진 f, th, v, r 같은 발음 등도 마찬가지다. 모음 역시 애플(apple)의 애[æ]와 엣지(edge)의 에[e]는 다른 발음이다.
유사해 보이지만 다른 이런 발음의 차이들이, '외국인이 말하는 것 같은' 어색함을 만들어낸다.
※ 참고로 한글은 매우 우수한 문자가 맞다. 그 이유도 명확하다. 아주 최근에 탄생한 문자 중 하나이며, 자연 발생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계획되고 설계되어 만들어졌다. 다른 나라의 기원조차 알 수 없는 오래된, 자연 발생해서 발전한 문자들과는 시작 자체가 다르다.
언젠가 한 번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는데, 카테고리를 만든 김에 해 보았다. 누군가의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외국어 발음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내 발음이 근본적으로 외국인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후 올바른 방식을 통한 아주 오랜 기간의 연습만이 발음을 바꿔낸다.
올바른 방식이 뭐냐면 발음을 만들어내는 혀와 이빨과 턱 등의 위치와 모양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혼자 하기는 거의 불가능해서 원어민 교사의 도움을 받아야 좋다. 자격증이 있는 진짜 교사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