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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공이란 대체 뭘까? : 아치듀크와 그랜드 듀크 (2) |
대공 시리즈 2부. 프린스에 이어서 '대공'으로 번역되는 다른 역사 속 작위들을 살펴 보겠습니다. 오늘 설명하는 Archduke와 Grand Duke는 이름에서부터 '대단한' 공작위들이지요.
3. 합스부르크 가문의 Archduke
중세가 끝나기 약 100년 전인 1358년. 오스트리아에서 독일어 erz(최고)와 Herzog(공작)란 말이 합쳐진 Erzherzog(최고 공작 : 대공)이라고 부르는 작위가 탄생한다. 영어로 번역된 Archduke[ɑːtʃˈdjuːk]라는 작위명으로 더 유명한데, 첫 번째(Arch : primary) 공작(duke)이라는 뜻이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본래 영세한 귀족이었지만 시류를 잘 타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다(다시 말하지만 황제는 선거로 선출했다). 이후 이 가문은 오스트리아를 먹고 승승장구하여 나중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거의 독점하는 유럽 최고의 명문가의 하나로 등극한다.
Archduke는 이 긴 여정 중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한 번은 해 봤지만 아직 날아오르지는 못한 시절 얻은 작위이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공작이었던 루돌프 4세는, 한 번 더 도약하기 위해서 우리 가문은 사실은 대공작(Archduke)이라는 주장을 했다. 그러고서 위조한 문서를 작위에 대한 근거로 내세우는데, 당대의 황제였던 카를 4세와 딜을 해서 공식적으로 Archduke라는 작위를 얻어낸다. 가끔 인터넷에 '대공이란 작위는 실제론 없었다'라는 말이 보이는 건 이렇게 위조로 시작된 작위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https://www.wikipedia.org/)
승리의 루돌프 4세.
합스부르크 가문이 생물학과 유전에 대해서 일찍부터 알았다면 좋았겠지만...
당대에는 Archduke라는 작위를 주변에서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중세가 지난 후 합스부르크 가문은 제국 최고의 가문이 되었고, 누구도 Archduke라는 작위를 무시하지 못하게 됐다. 합스부르크 가문과 오스트리아는 신성로마제국의 안에 있었기 때문에 Archduke 역시 제국의 작위였다. 황제의 바로 아래, 공작보다 대단한 대공작. 판타지 소설 속의 대공에 딱 어울리는 작위이다.
하지만 Archduke는 합스부르크 가문이 독점한 작위였고, 합스부르크 가문은 제국 황제를 독점하면서 사실상 황제가 동시에 가진 작위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 가질 수 없었다는 면에서 판타지 소설 속의 대공과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애초에 중세가 지난 이후에 확고해진 작위이기도 하고 말이다.
4. 동유럽과 러시아(Rus)권의 Grand Duke
Archduke와 함께 특정 범위 안에서 주로 사용되는 대공 작위로 Grand Duke가 있다. 이름만 봐도 알겠지만 '대단한 공작'이다.
본래 동유럽과 러시아권역에서는 본래 여러 부족의 통치자나 작은 권역의 군주를 칭하는 칭호(Великий Князь)가 있었는데, 슬라브어 Князь(knjaz)는 king에 가까운 말이었다. 동유럽 지역은 부족국가에 가까운 형태가 오랫동안 이어졌기에 서유럽의 프린스(Prince) 개념에 해당하는 지배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원래의 뜻은 Grand King/Ruler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나중에 번역하는 과정에서 Grand Prince 혹은 Grand Duke로 번역된 것으로 보인다.
Великий Князь → | [ 서쪽 동네의 용어 ]Duke : 공작/공국(Duchy)을 다스리는 자
Prince : 작은 군주/왕자/공작
Fürst : 군주/공작~후작 | → |
Grand Duke
Grand Prince
Großfürst |
흔히 쉽게 '중세 유럽'이란 하나로 생각하지만,
서로 다른 언어로 번역되며 혼란스러운 걸 잘 보여주는 것 같다.
(4-1) 중세의 Grand Duke
Великий Князь는 11세기에 러시아(Rus)에서 사용되며 왕가의 아이들에게 주는 칭호가 되었다. 이게 나중에는 영어권에서 Grand Duke로 번역된다. Grand Duke는 후에 러시아 황가에서도 계속 황가의 일원을 위한 명예 작위로 사용했다.
로맨스 판타지(이후 로판)에서 왕의 형제들은 전부 대공이라 불리는 경우와 상당히 비슷한 개념이다.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https://www.wikipedia.org/)
러시아권의 첫 차르. 이반 4세.
북유럽에 있는 리투아니아의 통치자 역시 전통적으로 대공(didysis kunigaikštis=Grand Duke)이라고 불렸다. 이 칭호는 13세기 민다우가스(Mindaugas) 대공부터 시작되었는데, 리투아니아가 왕국이 되지 못한 이유가 재미있다. 리투아니아는 기독교 입장에서 이교도였고, 개종을 하지 않았기에 교황이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어로는 리투아니아 대공국(Grand Duchy of Lithuania)이라고 번역된다. 하지만 리투아니아 대공은 왕과 완전히 같은 존재였다.
이런 식의 독립 국가로서의 대공국은 판타지 창작물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데, 이유는 동양인이 쓰는 판타지 소설은 결국 동양적인 선입관을 따라가기 때문으로 보인다. 왕이라 불리지 않지만 실제로는 왕국이라는 것은 동양에선 상식적이지 않다. 사실 대부분의 판타지 소설 속 '중세'는 옛 중국과 매우 흡사하다. 중국의 시스템에 유럽의 껍질을 씌웠다는 느낌이다.
(4-2) 중세 이후의 Grand Duke
Grand Duke라는 이름이 서유럽의 공식 작위로서 처음으로 등장한 건 중세가 끝난 1569년, 이탈리아 중부의 토스카나 대공국(Granducato di Toscana)이었다. 토스카나 대공국은 14세기 피렌체 공화국이 뿌리인데, 1532년 공화국이 멸망하면서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가 공국이란 명함을 인정해준다. 1569년에 대공국이 된 후 1737년 신성로마제국 황가에 사실상 흡수된다.
16세기 후반부터는 Grand Duke가 북유럽과 동유럽, 러시아권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이후 러시아 제국에서는 Grand Duke가 계속 황가의 핏줄의 명예 작위로 남았고, 서유럽에서는 나폴레옹 1세(1804-1815 재위)의 동맹들이 대공(Grand Duke) 작위를 얻었다가, 나폴레옹 몰락 후에는 낮은 군주 등급으로 격하되었다. 사실 로판에 등장하는 많은 요소들이 17~18세기 이후의 것들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로판의 대공은 여기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5. '대공'이란 번역어와 역사속 지위
대공은 오등작처럼 정말 '편한 번역명'이다. 각각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대공이란 단어가 그럴듯 해 보이는데, 전체를 통합해서 보면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탕이다.
오늘날 '공/대공' 안에서 등급을 나눌 경우 보통 Archduke가 가장 높고, Sovereign prince와 Fürst가 가장 낮다고 본다.
신성로마제국 : Archduke. 황제 가문(합스부르크)의 독점 작위.
독립 대공국 : Grand Duke. 사실상 왕.
제국 안의 대공국 : Grand Duke. 황제의 아래, 공작의 위.
나폴레옹 이후의 Grand Duke : 중급 군주.
러시아 : Grand Duke. 왕가/황가의 핏줄.
영국/프랑스 : Prince. 왕가의 작위.
공국(Duchy) : Duke. 고위 귀족.
공국(Principality) : Prince/Fürst. Duke 아래 고위 귀족.
대략 정리해 보면 이렇다. (* 왕권이 강했던 영국의 공작령과, 전통적으로 대귀족이 강력했던 프랑스, 연합체인 신성로마제국 안에서의 공작령은 통치권 개념이 다르다. 위에서는 그냥 편의상 Duke라는 용어로 통합했다.)
단지 이건 유럽 전체를 통합해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등작처럼 근현대로 계속 시간이 지나면서 유럽이 서로 교류하고 전쟁하고 남들과 비교하고 말을 번역하고 하면서 작위의 개념이 서로 비슷해지고 서열을 나누게 된 것 같다. 현실적으로는 남의 나라 귀족한테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없는 것이고, 국제 관계는 언제나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이니 저게 진정한 의미의 '전 유럽 서열'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된다.
시대의 흐름을 봐도 지위가 계속 변한다. 중세 말의 Archduke는 최강자로 비상하기 전이었고, Prince 계열이 메인이었으니까. 나폴레옹 전성기만 해도 Grand Duke가 좋아보였지만 나폴레옹 몰락과 함께 망했다.
6. 마치며...
사실 판타지에서 '대공'은 그냥 '최고 귀족'이라는 의미와 동급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역사 소설이 아닌 창작 소설이 완벽한 고증을 따를 필요는 전혀 없다. 작가가 스스로 자유롭게 설정하고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되고 합리적 세계가 만들어졌다면 그걸로 충분히 아름다우니까.
문제가 되는 건 이걸 실제 역사와 착각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독자가 아닌 작가라면 유럽과 다르다는 걸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다르기 때문에 확실하게 설정하고 설명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 말이다. '대충 중세 유럽이다'라고 말하고 넘어가면, 그때부터 독자는 시대 배경을 파고들고 작가는 고증을 철저히 지켜야 하는 처지가 된다. 왕의 입장에서는 자치권을 가진 귀족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존재이다. 공국이란 소재는 매력적이지만, 함부로 남발하면 '대체 왜 저 상황에서 대공과 공국을 만들었나?'라는 설정 붕괴가 따라올 수도 있다. 독자들의 매의 눈이 감시하고 있다. -_-+
실제 역사 속 대공은, 오등작도 그랬지만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른 의미를 갖는다. 서로 출발점이 다르고 문화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근대쯤 오면 비슷해지는 것이고...
어쩌다 보니 작위에 대해서 계속 얘기하게 됐다. 원래 한 편이 무난했는데 괜히 나눴나하는 생각도 든다. 뭔가 대공편은 처음 떠올렸던 것과 다른 종류의 글이 된 것 같다. 흠. 나중에 좀 더 머릿속에서 명확하게 정리가 되면 이 두 편은 리뉴얼을 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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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공이란 대체 뭘까? : 대공과 프린스(Prince) (1) |
오등작에 이어서 대공(大公) 이야기도 해 봅니다. 대단한 공작이라는 대공...
원래 1부 2부 구분 없이 하나로 썼습니다만, 분량을 줄일까 아니면 2부로 나눌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둘로 나눴습니다. 나눈 김에 설명을 약간 늘려서 보충도 해 보았네요.
1부에서는 대공으로도 번역되는 '프린스(Prince)'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2부에서는 대공으로 번역되는 그 이외의 작위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오늘 수요일에 1부가 올라갔고, 2부는 3일 후인 토요일에 올리겠습니다.
1. 21세기 판타지 창작물의 대공
판타지 소설에서, 특히 로맨스 판타지에서 아주 강력한 귀족의 작위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바로 대공(大公)이다. 큰(大) 공작(公爵)이란 뜻인데, 공작보다 하나 위의 작위를 끼워넣은 참으로 직관적인 등급명이다. 황제의 아래, 공작의 위. 공후백자남 오등작의 위에 서 있는 위대한 귀족! 판타지 소설에서는 크게 두 가지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아래와 같다.
(1) 왕국이나 제국의 틀 안에 있지만 자치권을 인정받은 (대)공국의 군주.
(2) 공작의 위, 왕/황제 아래의 가장 높은 작위. 이 경우 공국의 왕이라는 포지션은 잘 드러나지 않음.
일반적으로 남성향 판타지에서는 (1)의 모습을 많이 보여 주고, 로맨스 판타지(이후 '로판')에서는 (2)의 모습을 많이 보여 준다. 이유는 남성 판타지는 보통 전쟁이나 전투를 다루고, 로판은 보통 왕실 안에서의 인간관계에 집중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남성 판타지는 보통 최종 도달점이 (걸림돌을 다 죽인 후) 본인이 왕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어디까지나 경향적인 얘기다.)
그러면 현실에 존재했던 대공과 비교하면 어떨까? 사실 (1)과 (2) 모두 그럭저럭 맞아들어간다. '중세'로 한정할 경우 (1)이 더 맞는 말이긴 한데,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며 (2)도 대충은 맞는 얘기가 된다.
이렇게 말하면 단순해 보이지만, '대공(大公)'이라고 번역된 작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왜냐하면 '대공'은 역사 속의 여러 종류의 작위를 전부 하나로 묶어서 부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Erzherzog/Archduke, Grand Duke, Fürst, Prince 모두 '대공'으로 번역이 된다. 오늘은 이 중에서 가장 판타지 속 '대공'에 가까운 프린스(Prince)에 대해 알아보자.
2. 역사 속의 대공 : 프린스(Prince)
시대를 중세(5~15세기)라는 틀 안에만 놓고 보면, '대공'이란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지위는 프린스(Prince)다. 현대에는 주로 '왕자'라고 번역되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단어인데, 사실 유럽에서도 혼란스러운 단어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Prince란 작은 땅의 군주이기도 했고, 왕실의 자손이기도 했고, 귀족의 지위이기도 했다.
이제부터 한번 알아보자.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
1513년 출간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원제목은 『II principe』이다.
영문으로 번역된 제목은 『The Prince』.
(2-1) 프린스 Prince 의 기원과 공국
프린스(Prince)는 본래 라틴어의 프린켑스(prīnceps)에서 기원한 말로, '제 1인자'라는 뜻이다. 로마 제국의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칭호였다.
중세 시대에는 원래 왕은 왕인데 왕(King)이라고 하기엔 뭔가 좀 부족한 군주의 칭호로 사용돼서, 작은 땅의 군주를 프린스(Prince)라고 불렀다. 중세 말이 되기 전의 프린스는 사실상 '작은 영토의 왕' 혹은 주권(sovereign)을 가진 군주/봉신이란 뜻이었다. 앞서 말한 '자치권을 인정받은 공국의 군주'에 가까운 뜻이다.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
오랑주 공국(principauté d'Orange).
1163-1713
이렇게 자치권을 가진 군주(Sovereign Prince)가 다스리는 땅을 Principality/Princedom라고 불렀다. Principality를 보통 '공국(公國 : 공작의 나라)'이라고 번역하고, 통치자인 Prince는 대공이나 공작으로 번역한다. 오등작 번역이 너무 편하게 갔다는 이유가 이런 혼란을 야기해서다. Duke도 공작이고 Prince도 공작이라니.
대부분의 공국 - 작은 영토들은 중세 초중기에 왕국에 통합되었고, 상대적으로 왕정에 가까운 영국과 프랑스 지역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연합체의 성격을 띤 신성로마제국의 경우는 계속해서 상당수가 남아 있었다. 특히 공작(Duke)이 통치하는 공국(Duchy)이나 백작이 통치하는 백국(County/Earldom) 등도 Principality의 개념 안에 혼용되는 편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면 공국의 숫자는 더 늘어난다.
(2-2) 고위 귀족의 호칭, 혹은 작위의 이름
시간이 흐르면서 작은 지역의 지배자(Prince)들은 봉건 체제 하에 왕을 중심으로 묶였고, 군주라기보단 신하에 가까워졌다. 그러면서 프린스(Prince)에는 '작은 군주'와 '고위 귀족'의 의미가 섞이게 된 것 같다.
그러다보니 프린스가 대략 '높으신 분' 같은 뜻으로 고위 귀족을 부르는 호칭처럼 되었다고 한다. 상대를 '~공(公)'이라고 높여부르게 된 중국의 공작(公爵)의 변천과 꽤 비슷한데, 결국 왕이란 존재가 자신 이외의 최고 권력자를 용납하지 못하다 보니, 중국의 공작이든 유럽의 Prince든 원래의 지위를 잃은 게 아닐까 싶다.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Edward_II_of_England
영국 최초의 웨일스 공(Prince of Wales), 에드워드 2세
작위 체계에 편입되면서 프린스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말이 됐다. 예컨대 가장 유명한 프린스(Prince) 작위인 영국의 웨일스 공(Prince of Wales)은 13세기 말 에드워드 1세가 웨일스를 정복하며 잉글랜드에 흡수됐다. 이후 웨일스 지역에서 계속 프린스를 자칭하며 반란이 지속되자, 1301년 아직 왕자였던 에드워드 2세에게 정식으로 웨일스 공(Prince of Wales) 작위를 수여했다.
이런 시대적 변화에도 많은 작은 독립국의 지배자들은 여전히 전통에 따라 스스로를 프린스라고 불렀다. 그러기에 '작위로서의 프린스(대공/공작)', '작은 영토의 통치자', '높으신 분'의 뜻이 전부 한 단어 안에서 혼용되었다.
(2-3) 차기 왕위 계승자의 호칭, 왕의 아들, 그리고 후계자
이런 상황에서 유럽에는 새로운 전통이 생겨났다. 바로 차기 왕위 계승자로 확정된 왕자가 특정한 영지의 작위를 물려받는 관습이 생겨난 것이다. 그 대표격인 영국의 웨일스 공(the Prince of Wales)은 14세기 중엽부터는 왕의 후계자(Crown Prince)만이 받는 작위가 됐다.
이 전통이 만들어지고서 프린스(Prince)란 단어에 '군주'나 '작위명'이 아닌, '왕위 계승자'라는 뜻이 새롭게 생겨난다. 후계자가 계속 프린스 작위를 독점한 결과였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자 일반적인 왕자 역시 프린스라고 불리며, 오늘날 가장 유명한 뜻인 '왕자'가 됐다.
* 이미지 출처 https://www.princeofwales.gov.uk/
* 문제가 될 경우 말씀주시면 삭제합니다.
현(現) 웨일스 공(the Prince of Wales). 영국 왕위 계승자 1위 찰스 왕자.
1343년 흑태자 에드워드부터 차기 왕위 계승자의 독점 작위가 됐다.
이제 새로운 혼란이 생겨났다. 왕위계승자가 갖고 있는 작위, 예를 들어서 the Prince of Wales는 '웨일스 공'이라는 공작위이다. 그런데 이걸 갖고 있는 사람의 신분 호칭은 '왕자(Prince)'이다. 프린스(왕자)가 프린스(공작) 작위를 갖고 있는 것.
여기에 더해 왕정 시대의 유행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왕족이 아닌 일부 고위 귀족의 후계자들도 Prince 작위를 받는 유행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들 역시 프린스로 불리게 된다.
한편 신성로마제국의 사정은 약간 달랐다. 독일어에서는 왕자(Prinz)와 군주(Fürst)를 구별해서 사용했다. 독일어 Fürst는 어원이 Prince와 같았고, 영어의 공작(Prince)에 대응하는 번역어로 사용됐다. 중세 말 즈음부터는 Fürst가 제국의 정식 작위 체계에 편입된다. 공작(Herzog)보다 아래이며 백작(Graf)보다 높은, 황제의 봉신에게 주는 작위였다.
(2-4) 귀족의 호칭이 된 프린스
중세가 끝난 17세기에는 프린스의 뜻이 더욱 진화했다. 프린스(Prince)가 고위 귀족에게 수여하는 호칭(style)의 하나가 되었고, 이 호칭 역시 후계자에게 상속되는 경향을 보이게 됐다. 이게 유행이 되어서 고위 귀족의 후계자를 부르는 관습적 호칭이 됐다.
이런 변화는 중국에서 '공자(公子)'란 말이 '지체 높은 집안의 아들'이라고 변해간 것과 참으로 흡사하다. 오늘날 쓰는 '아이고 우리 왕자님'과도 비슷하고 말이다.
이미지 출처 : https://wappenwiki.org/
Chimay 공국(Principality of Chimay)의 문장(Coat of Arms).
맥주로 유명한 Chimay는 벨기에에 위치한 오랜 공국이기도 했다.
1486년 County에서 공국(Principality)으로 승격했다.
결국 프린스(Prince)는 본래 작은 군주였으나, 고위 귀족의 작위이도 했고, 황제와 왕의 아들, 고위 귀족의 아들, 높으신 분을 부르는 호칭 등이 되었다. 영어에서도 이게 참 헷갈리기에 오늘날 보면 Sovereign Prince, Crown Prince, Royal prince, Courtesy prince, Ruling prince 같은 수식어가 종종 붙는다. 사실 이래저래 이야기는 했지만 결국 프린스는 '군주'라는 의미에 가장 가까웠던 것 같다. 고위 귀족이든 왕족이든 결국 '군주'라는 존경의 의미에서 파생된 뜻이니 말이다.
2.5. 1부를 마치며 : 프린스와 판타지의 대공
프린스는 참 혼란스러운 단어다. 안 그래도 뜻이 많은데 오늘날 '왕자'라는 뜻이 너무 유명하며, 마찬가지로 여전히 유럽에 프린스 작위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프린스는 군주라는 의미였고, 자주권을 보장받은 영토를 다스리는 봉신이기도 했으며, 정식 작위 체계에 들어온 고위 귀족의 작위이기도 했다. 판타지 소설에서 사용되는 '대공'은 이런 Prince가 원형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지역별로 보면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프린스(Prince)라는 작위가 왕족에게 독점되는 경향을 보이며 공작(Duke)보다 위에 있는 작위였다. 항상 차기 왕위계승자가 작위를 물려받고 실질적인 통치권은 없는 경우도 있어서, 영토가 나중에 왕자의 가문으로 분리되어서 독립할 위험도 없었다.
신성로마제국이나 동유럽, 이베리아반도 쪽에서는 작은 땅의 통치자로서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제국의 작위에 편입된 Fürst의 경우 황제의 봉신으로서, 공작(Herzog)보다는 낮지만 백작(Graf)이나 변경백/후작(Markgraf)보다는 높은 작위였다. 제국은 연합체였기 때문에 Fürst가 제법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한다.
| Prince : 제 1인자 | (작은) 군주
통치자로서의 성직자 | 고위 귀족
프린스(작위) : 대공/공 | 후계자
왕자
십자군 점령지의 공국(Principality) | 프린스(호칭 : style)
고위 귀족의 후계자(관습적 호칭) |
의미가 계속 변하고 더해진다
군주로서의 프린스(Prince)가 항상 '대공'으로 번역되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어떨 때는 '공(작)', 어떨 때는 '대공'으로 번역되며, 번역가들 사이에서 통일이 안 되어 있다. 프린스란 말 자체가 워낙 경우의 수가 많기도 하고 말이다. 오등작과 대공의 번역 체계는 일본이 첫 단추를 완전히 잘못 끼운 느낌이다. 너무 쉽게 가려고 했달까. 특히 지금 시대에는 이걸 굳이 한자어로 번역을 해야 하나 싶다.
'대공'으로 번역되는 작위는 몇 개가 더 있는데, 2부에서 이어서 소개하겠다. '큰 공작(大公)'이라는 번역어가 탄생한 이유가 되는 작위들로 보인다.
[ 2부에 계속... ]
# 부록. '대공'은 아니지만 프린스 : 교회의 프린스
프린스가 사실상 '군주'라는 뜻이었다 보니 교회령을 통치하는 성직자를 Prince of the Church라고도 말했다. 실제로는 Prince 뒤에 교회의 계급을 붙였다.
예를 들면 신성로마제국의 주교령을 통치하는 성직자를 주교후(Prince-Bishop, Fürstbischof, 主敎侯)라고 불렀다. 번역명이 재미있다. 종종 후작으로도 번역되는 퓌르스트(Fürst)와 급을 맞춰서 주교-후작이라고 말한 것일까? 대주교의 경우 대주교후(Prince-Archbishop), 수도원의 경우 수도원장후(Prince-abbot, Fürstabt)이라고 불렸다. 여기에 영지의 이름이 붙어서, 아우크스부르크 주교후(Prince-Bishop of Augsburg), 켐프텐 수도원장후(the Abbot of Kempten) 같은 식이 된다.
유럽 전역에 존재하기는 했으나, 앞서 얘기한 세속 프린스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신성로마제국을 중심으로 존재했다. 독일은 이렇게 분산되어 있는 힘이 모이질 않아서 근대까지 고생을 한다.
* 참고로 Fürst는 Prince의 번역어로서 '공작'으로 자주 번역되는 경향이 있는데, 신성로마제국 안에서 공작(Herzog)의 아래 작위이기 때문에 '후작'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그래서 Reichsfürst를 '제국공'이라고 번역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국후'라고 번역하는 사람도 있고, 같은 논리로 Prince-Bishop을 '주교후'라고 번역하는 사람도 있고 '주교공'이라고 번역하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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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세기 GPX 사이버포뮬러 30주년 |
작년이 신세기 사이버포뮬러 30주년이었다고 합니다.
팬으로서 참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생각도 들고, 완결편이 나온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굿즈가 발매되고 그걸 사주는 팬들이 있다는 게 참 감개무량합니다.
제가 평생 동안 봤던 애니메이션 중에서 최고로 평가하는 작품이 사이버포뮬러는 아니었지만, 제가 가장 재미있게 본 작품은 사이버포뮬러가 맞습니다. 당시에 어리기도 했지만 제가 유일하게 팬카페에서 열심히 활동을 했던 것도 사이버포뮬러 밖에 없었네요. 개미님이 운영하시던 다음 사포동이 떠오르네요. 좋은 시절이었죠.
30주년 기념 굿즈가 이것저것 나왔는데, 전부 사진 않고 일부만 샀습니다. 어쩌면 더 살지도 모르고, 어쩌면 여기서 멈출지도 모르겠네요.
2022년은 시리즈 마지막 작품인 SIN의 배경이 된 해이기도 합니다.
사진의 모델은 아마 30주년 기념 발매까진 아니고 그냥 발매 시기가 겹친 것 같습니다.
사이버포뮬러 방영 당시부터 아스라다를 정말 갖고 싶었습니다. 정말정말 갖고 싶었죠. 문제는 당시에 나왔던 사이버포뮬러 프라모델은 접착제로 조립을 해야하고 에어스프레이로 따로 도색을 해야하는 정말 하드코어 매니악한 제품이 전부였습니다. 도색을 하지 않으면 그냥 민짜 회색 제품이 대부분이었죠. 그런 걸 사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 이후에 계속 산다산다 언젠간 사겠다 생각을 했는데, 이번에 구입을 했습니다. SUGO-GIO 뉴 아스라다 AKF-0/G. 마지막 작품인 SIN에 등장했던 아스라다입니다. 모델카 하나를 사고서 이렇게 감상에 젖을 수 있었는지 저도 놀랄 정도였습니다.
30주년 기념 아스라다의 자동차 키입니다. 아스라다는 시동을 걸 때 세 단계의 드라이버 인증을 거칩니다. 첫 번째가 자동차 키, 두 번째가 홍채 인식, 세 번째가 음성 인식이죠. 그 중 자동차 키에는 광물이 들어 있는데, 분광 스펙트럼의 고유성 체크를 해서 단 한 개의 키만을 진짜로 인식하는 보안 시스템을 갖췄죠.
더 비싸더라도 진짜 설정의 모습을 갖췄다면 좋았겠지만, 이 정도로도 만족합니다. 감동적이네요.
SUGO 엠블렘 핀 브로치입니다. 브로치로 쓰려는 건 아니고 전시용으로 샀습니다.
과거부터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를 계속 좋아해왔음에도, 소위 '덕질'을 한 경우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습니다. 사이버포뮬러도 DVD와 OST 이외의 굿즈를 산 건 30년이 지난 지금이 처음이네요. 지난 수십 년 간 '언젠간 갖고 싶다'고 생각한 걸 사고 나니 정말 기쁩니다. 굿즈 몇 개 샀다고 이렇게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워낙 피규어나 그런 거에 관심이 없었다보니 이제 살 수 없는 예전에 나왔던 것들이 좀 아쉽긴 하네요.
최근에 모으던 걸 사진 찍어서 올려봤습니다. 30주년 기념 행사 및 굿즈 판매는 오프라인에서 진행했다는데, 코로나만 아니었어도 큰 무리를 해서라도 달려갔겠지만 시기적으로 어쩔 수가 없었네요. 월드 투어도 했다는데 코로나 때문인지 대만에만 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계속 사이버포뮬러 굿즈가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후속작이 나오면야 더욱 좋겠지만, 잘 끝난 작품을 이상하게 만들지는 않기를...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가 실현되는 게 가장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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