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상자

reply by 아이어스 in 정상인

일단 공평이란 말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데... 좀 애매한 표현인 것 같다. 공평이란 건 기본적으로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이상적인 개념인데다가 게임을 하는 사람의 지능부터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공평함이란 게 결국 존재할 수 있을지...

애초에 이런 얘기는 우리 둘이 하는 것보단 연구진이 연구를 하는 게 낫긴 한데 뭐 아무튼 이야기해보면.

밸런스를 맞추는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겠지. 1초만에 쉽게 생각해보면 우선은 승률, 사람들의 선호도, 그리고 특정 상황에서의 상성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비슷한 실력의 사람이 승률이 대략 5대5란 건 밸런스가 잘 맞는다는 중요한 지표가 되겠지. 스타는 멀티플레이를 할 때 배틀넷이란 곳에 접속을 하도록 했는데, 이런 환경은 표본 집단을 관찰하기 참 좋고 블리자드는 스타1때부터 많은 노하우를 쌓아왔지.

비슷한 실력의 집단 이란 건 래더 순위 같은 걸 보면 쉽게 나눌 수 있고, 그걸 응용한 것인지 스타2도 플레이어의 실력을 측정하는 도구가 안에 내장돼있는 것은 게임을 좀 해보면 잘 알 수 있잔아.

선호 종족을 봐도 결국 사람들은 이기기 위해선 강한 종족의 최고 전략을 모방하게 되기 때문에 사용 종족 통계 같은 걸 보면 쉽게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해서 불공평해지는지를 알 수 있겠지.

그리고 특정 상황이란 건 정말 중요한데, 옛날에 저그의 초반 러쉬가 왜 너프를 먹게 됐는지를 생각해보면 쉬운 이야기야. 특정 상황이나 시기에서 특정한 종족이 반드시 우위를 갖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그걸 막지 못하게 된다면 그 또한 밸런스가 맞지 않는 거잔아.

블리자드는 심지어 1분에 몇 번 클릭을 하는지까지도 계산하는 애들인데... 얼마나 많은 조작을 해야지 어떤 플레이가 나온다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조건에서 밸런스를 볼 수 있을테고. 결국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조정해서 밸런스란 걸 내놓겠지만, 결국 완전히 동일하지 않다면 최소한 플레이어의 취향 차이 때문에라도 '평등'하다는 건 말이 안 되긴 하지. 근데 문제는 동일하지 않은 조건에서 평등을 찾는 이유가 있을까란 건데...

블리자드가 만든 게임을 보면 워크래프트로 명성을 쌓고, 스타로 재미 좀 본 것 같고, 와우로 대박을 쳤지. 여기서 와우를 보면 와우는 참 재밌는 게임이었어. 다양한 종족이 등장하는데 서로 다른 개성을 갖고 있으면서 진영을 나눠서 PVP를 강제로 시켰거든.

근데 더 재밌는 게 뭐냐면 블리자드가 어떤 식으로 밸런스를 맞춰갔는지야. 나는 원래 전사를 했는데 전사는 PVP가 불가능한 직업이었지. 나보다 레벨과 장비가 낮은 플레이어에게도 우습게 보이는 직업이었다. 상대가 방심한 상태에서 정말 실력이 별로면 내가 이기기도 했지만 100번 중에 한두번 정도의 이야기.

이 당시에는 도적과 흑마법사가 최강의 직업이었는데, 둘 다 잘 키우면 1대3이나 그 이상도 가능한 직업이었어. PVP에서 만큼은 압도적인 능력이었지.

근데 얘네가 와우에 투기장이란 걸 도입하고 e스포츠화를 노린 시기가 있는데 이 때부터 재미있는 조정이 들어갔다. 결론적으로는 거의 모든 직업의 기술들이 비슷해지면서 원래 갖고 있던 개성이 사라지고 서로가 웬만한 걸 다 할 수 있게 됐지. 물론 완전히 같아지진 않았으니 여전히 성능차라거나 하는 건 존재하는데... 조정하기 이전과 비교하면 한없이 비슷해졌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여기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사실 전이 더 좋았다. 내가 PVP에서는 무조건 지는 상황이었어도 난 PVE에서는 정말 강한 탱커였거든. 서로의 역할분담이 확실하면서 자신만의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재밌었는데, 비슷비슷해지니 하나도 재미가 없어. 내가 왜 모든 직업 캐릭터를 하나씩 다 키웠는지 의미가 없어지더라구.

스타2를 보면 재미있는 짓을 벌여놨는데. 캠페인 모드를 보면 종족간 특성이 극대화되면서 유닛들을 개조하고 능력을 부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지. 이건 아마도 종족이나 유닛의 특성을 극대화시키면 멀티플레이에서 밸런스를 잡는 게 너무 힘들어지기 때문에, 스타1에서 이런 부분을 배우고서 스타2는 아예 다른 걸로 나눈 것 같아. 결론적으로는 캠페인은 캠페인의 재미를 잡으면서 RTS와는 좀 다른 장르로 나갔고 멀티는 멀티대로 됐지.

하지만 그럼 여기 만족하냐하면 사실 그러진 않은 것 같아. 이번 공허의 유산을 보면 협동전이란 게 생겼는데, 기존에도 AI를 상대로 싸울 수 있었거든. 그럼 왜 이런 걸 넣었을까?

내 생각에 가장 큰 이유는 캠페인에서만 사용 가능한 유닛과 종족의 개성을 멀티플레이에서도 쓰게 하기 위해서야. 단순히 둘이서 특정 미션을 갖고 싸우기 위함이 아니라, 멀티 플레이 밸런스와 무관하게 자기네가 만든 걸 다 누리게 하고 싶었던 거지.

그럼 블리자드가 진짜 만들고 싶었던 건 뭐였을까? 다양한 능력과 개성을 가진 유닛이 극대화된 캠페인 모드일까 아니면 그런 부분을 빼버린 멀티 플레이 모드일까? 사실 그건 우리로선 알 수가 없지. 단지 와우의 밸런스 조정과 스타1이나 스타2의 모습을 보면, 내가 보기엔 블리자드 또한 '가능하면 서로 비슷하게'만드는 것이 밸런스 조정에서 중요한 부분이라 여기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근데 완전히 같아지면 재미가 없으니 안 그러는 걸테고...

요전 글에서 스타에 대해 이야기할 때 특정 시기에 강해지고 약해지고가 있다고 했는데, 사실 그런 부분이 스타 같은 게임에서 재미를 만들어내는 부분일 수도 있을 거야. 서로 다른 기회를 만들어내는 시기가 있다는 거지. 하지만 여기서 밸런스가 중요해지는데 그 시기에 상대를 막아낼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야만 게임이 제대로 돌아가니까.

삼국지와 문명과 노부나가의 야망을 얘기한 걸 보면서 획일화된 게임 방법보다는 다양한 방식의 전략 전술을 세우는 걸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스타의 서로 다른 종족이 그런 너의 욕구를 채워주는 걸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삼국지도 그런 게 가능은 하지만 쉽게 플레이할 때는 잘 보이지 않지.

사실 코에이 삼국지는 삼국지를 제대로 만든 게임은 아닌데, 원래 삼국지의 매력 중 두 가지를 꼽는다면 하나는 책사들의 기책을 통한 전황을 뒤집는 것이겠고 나머지 하나는 외교라고 하고 싶다. 코에이 삼국지는 이 둘을 모두 잡지 못했고 구현 자체가 제대로 안돼있지.

더불어서 삼국지는 현실을 반영한 게임이라서 '공평함'은 있을 수 없어. 근데 멀티 플레이의 경우 조작을 좀 더 해주면 현 시스템을 유지하면서도 좀 더 재밌는 플레이가 가능하다. 단지 네트워크 환경에선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데 보드 게임으론 가능하겠지.

하지만 만일 3명 이상이 삼국지를 멀티플레이로 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유비가 뭣도 없으면서 촉을 세울 수 있었던 건 천하를 셋으로 나눠먹었기 때문이지. 하진이나 동탁이 강한데도 진 건 약한 애들이 연합을 했기 때문이고. 조조가 가장 강하고 많은 훌륭한 부하를 두고 황제를 데리고 있으면서도 쉽게 다른 애들을 치지 못했던 이유도 하나에 온 힘을 기울이다가 뒷통수를 맞기 싫어서야.

코에이 삼국지는 1대1 상황에서는 당연히 무장이 강하고 많으면 이기지. 하지만 1대1대1 보다 플레이어가 많아지면, 단순히 무장이 강하고 많다고 이기기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현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가도 플레이어만 많아지면 진짜 삼국지랑 유사한 상황이 나오지. 이걸 밸런스에 반영해서 한명은 강한 대신 부하수가 비교적 적거나 하게 하고, 아니면 강하고 부하도 많지만 다른 상대가 많게 하거나 해서 이런 비율을 조절하면 충분히 재미있는 상황이 나오는데.

내 생각에 너는 이런 상황에서 재미를 느끼는 게, 시류를 보면서 다양한 전략과 타이밍으로 승패가 갈리고, 그걸 위한 여러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걸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뭐 난 돈벌이는 잘 모르겠고 일단은 하던 얘기만 해봤음 ㅎㅎ

2015/12/24(Thu) 10:3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