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에 가장 재밌게 봤던 만화였던 '늑대 폐하의 신부' 이야기를 이제야 꺼내네요.
늑대 폐하의 신부는 백양국(白陽国)이라는 고대 중국(+일본) 풍의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공포 정치를 하는 냉혹한 왕과 가짜 후궁으로 들어간 여주인공의 달달하고 유쾌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강력한 무력을 이용해서 왕이 되어 반란을 진압하고 숙청으로 기반을 다진 '늑대 폐하'는 계속되는 혼담을 피하기 위해서 가짜 신부를 데려오기로 하는데요.
서민 출신의 여주인공 유우린은 짭짤한 알바가 있다는 말에 홀랑 넘어가 한달 동안 가짜 후궁 연기를 하게 되지만, 기물 파손으로 오히려 빚더미에 올라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 프로 임시 신부(?)를 향해서...
요즘 식으로 보면 계약 위장 결혼 + 잔혹하고 무서운 왕 + 서민 여주인공이란 키워드겠네요. 순정 만화에선 오래 전부터 계약 결혼 이야기가 있었지만, 요즘 로판에서 계약 결혼이 워낙 넘쳐 나는 주제이다 보니 2009년의 이 만화는 선구자(?)란 느낌이 듭니다. 14년 전 분위기의 계약 결혼물이랄까요.
신하들 앞에서는 러브러브 연기를 하지만, 빚을 청산하고 집에 가고 싶은 계약 신부 여주와, 자신을 스스럼 없이 대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강아지 모습만 보여주는 늑대 폐하 남주의 일상을 그린 착각계 로맨틱 코메디입니다.
여주인공은 남주가 늑대를 연기하는 외로운 강아지라고 착각하고서 늑대 모습과 강아지 모습의 사이에서 갭모에를 느끼며 빠져듭니다. 늑대 폐하 역시 평범한 소녀의 몸으로 권력 암투와 납치, 암살, 독살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뛰어다니는 여주를 보며 서서히 빠져들고요.
기본적으로 냉혹한 늑대(남주)를 강아지로 착각하는 토끼(여주)의 구도입니다. 목표를 찍으면 놓치지 않는 늑대(강아지 연기 중)와 늑대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토끼의 귀여움이 관전 포인트이죠.
최근 한국 로판의 여주인공이 보통 만능 천재의 면모를 보이는 것에 비해서, 늑대 폐하의 신부는 때묻지 않은 서민 소녀가 중앙 정계의 권모술수 속에서 귀비(貴妃)로서 왕을 보좌하고 신하들을 돕기 위해 서툴지만 올곧게 분투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주변 인물들 역시 허수아비 들러리가 아니라 각자의 개성과 능력을 가지고서 활약하고요.
그렇게 친구를 사귀고 적과 싸우고, 각 인물들의 사연이나 과거에 얽히는 어찌 보면 전형적인 일본 만화의 구조를 따라갑니다. 하지만 지루한 클리셰가 아닌 왕도의 재미를 잘 보여주죠.
완결되고 5년이나 지나서 이 글을 쓰는 건, 개인 사정으로 중간에 못 봤던 기간이 길었거든요. 처음부터 다시 읽으려다 보니 늦어졌네요. 사실 앞으로 만화 이야기를 할 때는 다시 읽고서 글을 쓸까도 생각 중입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신분의 벽을 넘어 유대를 쌓으며, 신뢰와 애정으로 서로에게 다가가는 늑대 폐하와 가짜 신부의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오래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어도 예전처럼 재미있었네요.
제목 : 늑대 폐하의 신부 / 狼陛下の花嫁
권수 : 전 19권
기간 : 2011.03. ~ 2019.05. / 2009.11.~2018.09.
작가 : 카우타 마토 / 可歌まと
출판 : 학산문화사 / 白泉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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