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를 보니 어느새 토요일이군요. 시간이 참 빠르네요.
아까 걸어가다가 고양이를 봤는데 근처의 다른 사람들이 난 개보다 고양이가 좋다고 수군거리는 걸 들으면서 지나쳤습니다. 참 세상이 많이 바뀌었구나 싶었죠.
종종 지인들과 하던 이야기입니다만, 우리나라는 사실 한 20년 전까지만 해도 고양이를 전 국민적으로 매우 싫어하던 나라였습니다. 30년 쯤 전으로 가면 전 국민이 증오하고 기피하던 대상이었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는 고양이를 주술적인 의미의 꺼림직한 존재로 봤고, 적어도 제가 어릴 때 고양이에 대한 호의를 표시한 사람은 기억 나지 않습니다. 무서워하기까지 했죠.
보물섬 등의 과거의 소년 만화 잡지를 보면 납량 특집 만화가 종종 실렸습니다만, 여름 공포 만화 소재로 항상 등장하던 것 중 하나가 고양이의 저주였죠. 전 그 중 하나가 너무 무서워서 어린 마음에 그 만화만 가위로 잘라내서 호치킵스로 전방위를 철하고서, 봉지에 넣어서 봉인 의식을 치른 후에 버렸습니다. 정말로요. 아마 방송 쪽 분위기도 비슷했을 겁니다.
특히 부모님 세대를 보면 고양이는 항상 재수 없는 불길한 존재였으며, 그 울음소리는 아기의 울음을 흉내 내는 요사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런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 건 사실 저희 세대 정도부터입니다. 제 새대는 누구보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에 둘러싸여서 자랐던 세대죠. 그 세대의 만화는 주옥 같은 것들이 많았고요.
일본 문화는 예전부터 고양이에게 호의적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일본 역시 비교적 최근(수십 년 사이)에 고양이의 지위가 급상승하면서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의 아이콘이 되었다고는 합니다만, 마네키네코 같은 상징물을 보면 과거에도 한국처럼 저주의 대상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런 일본 만화를 보고서 자란 저희 세대는 고양이를 그리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전후로 일본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계속 쌓이더니, 대략 2000년대 초중반부터 후반에 걸쳐서 미디어 등을 통해서 극적으로 고양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반려동물'이란 용어가 생겨나고 그들을 '아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난 것 역시 일조했을 겁니다.
대략 2010년 즈음이 되면 고양이는 한국에서도 귀여움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더더욱 흥미로운 것은, 원래 고양이를 싫어하던 사람들조차도 마음을 열었다는 겁니다. 이런 걸 보면 참 저희가 갖고 있는 이미지나 인식, 사상이 사실 저희 스스로 만들고 소유하고 있는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어서 착잡하죠.
아무튼 이런 것들을 보면 참 세상이 많이 바뀌었구나 싶습니다. 고작 몇십 년 만에도 완전히 다르게 바뀌는구나 싶고요. 사실 뭐 저 어렸을 때는 휴대폰이 없어서 유선 전화로 약속 잡고 하염없이 약속 장소에서 서서 기다리던 시대였으니까요. 세상 많이 변했죠.
비슷한 걸로 여우가 있습니다. 특히 구미호요. 여우 역시 전설의 고향에나 나오는 간 빼먹는 귀신이라는 인상이었습니다만, 1994년에 '구미호'라는 영화가 나왔습니다. 이 영화에서 구미호가 인간을 사랑하게 그려졌죠. 이건 마치 소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와 '브람스토커의 드라큐라(1993)'란 영화를 통해서 로맨틱한 뱀파이어가 만들어진 것과 비슷합니다. 흡혈귀 역시 과거 영화를 보면 그냥 악마 같은 괴물 이상의 무엇도 아니었거든요.
※ 제가 어렸을 때 기억에 '브람스토커의 드라큐라'의 제목을 다른 걸로 잘못 적었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문화컨텐츠에 대한 관심도 영향을 끼쳤을 것 같습니다. 저는 만화에 둘러싸여서 자란 시대였는데, 당시엔 정말 '한국적인 것들'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요즘도 어렵지만 불과 10년 20년 전에는 거의 찾기가 불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지금은 그것에 비하면 천국처럼 풍부해진 거죠.
만화, 영화, 드라마, 소설 등의 소재로 쓰기 위한 한국적인 요소의 발굴 역시 여우나 구미호의 이미지 개선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을 것 같습니다.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
그냥 문득 옛날엔 그랬단 얘기를 인터넷에 한 번쯤 남겨 보고 싶었습니다. |
